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이 3일 국회에서 녹취 파문, 후원금 쪼개기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민의힘 태영호 최고위원이 3일 국회에서 녹취 파문, 후원금 쪼개기 의혹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태영호 국민의힘 최고위원이 3일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는 보좌진 녹취록 유출 사태와 정치후원금 쪼개기 논란 등에 대해 해명했다. 하지만 태 의원은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녹취록 발언과 쪼개기 후원금 의혹 등은 모두 ‘태영호 죽이기’ 일환이라며 적반하장식 해명으로 일관해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태 의원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시.구 의원들 후원은 쪼개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또한 보좌진 녹취록 중 ‘공천’ 관련은 사실이 아니며 그것보다는 불법으로 회의가 녹음됐고 그 유출자를 끝까지 색출할 것이라고 강변했다.

최근 당 지도부는 태 의원과 관련한 일련의 추문에 대해 그 정치적 책임을 묻고 당 윤리위원회 가중 처벌 가능성까지 거론하고 나섰다. 하지만 이런 당 지도부의 ‘질타’ 분위기와는 딴판으로 태 의원이 긴급 기자회견에서 내뱉은 핵심은 부당한 ‘태영호 죽이기’에 분연히 맞서겠다는 프레임 전환 시도였다.

태 의원이 최근 여러 차례 ‘대형사고’를 친 것은 그동안 누적된 그의 돌발행동과 극우 지지층만을 의식한 ‘관종 정치’의 결과다. 그는 다분히 극우성향 지지층을 의식한 제주 4.3 사건과 백범 김구 선생 관련 발언으로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켰다. 이는 당에게 큰 정치적 부담을 안기는 것이었지만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내년 총선 공천을 의식해 ‘일단 튀고 보자’며 잇단 무리수를 던지고 있다.

제주 4.3 발언 등으로 자숙하며 최고위원 회의에도 불참하던 그는 지난 4월 24일 불현듯 나타나 전광훈 목사를 언급하며 “(전당대회에서) 여론조사 3% 꼴찌로 시작했으나 그렇다고 애먼 곳에 도움을 구걸하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여권 내에서는 “사실상 김기현 대표를 겨냥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앞서 김 대표가 “전당대회 당시 전 목사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실이 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당시 태 의원이 사실상 공천권을 쥐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의 환심을 사기 위해 김기현 대표도 무시하는 안하무인 태도를 보였다는 지적이 많았다.

그 후 ‘이진복 대통령실 정무수석이 공천 문제를 거론하며 한일관계에 대해 옹호 발언을 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했다’는 발언이 담긴 음성 녹취가 공개되면서 태영호 의원의 대형사고는 정점을 찍었다.

이 즈음에 한 언론이 “태 최고위원이 지난해 지방선거 당시 자신 지역구(서울 강남 갑) 시·구의원들로부터 정치후원금을 받았으며, 이 과정에서 기초의원 본인은 물론 가족, 지인들 명의로 후원금을 보내는 이른바 ‘쪼개기’ 방식이 사용됐다”는 보도까지 하면서 초선에 불과한 태 의원이 국민의힘 전체를 휘청거리게 하고 있다는 비판이 본격적으로 불거져 나왔다.

특히 ‘공천 개입’ 의혹 녹취록과 관련해서는 당사자들 부인에도 불구하고 태 의원이 최고위원 당선 직후 이진복 수석을 찾아가 만난 점, 이후 최고위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정부 외교·안보 정책에 옹호 발언을 쏟아낸 점 등을 두고 녹취 내용이 사실일 것이라는 ‘합리적 의구심’이 당 내부에서도 나와 당 지도부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초선의원에다 탈북자로서 한국 정치의 실상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태 의원이 국민의힘 전체를 위기로 몰아가자 당 지도부도 그에 대한 중징계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다. ‘태 의원보다 대통령실을 더 가까이 안다’고 했던 장예찬 청년 최고위원은 “오해를 야기할 수 있는 부적절한 내용이 국민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에 그 부분은 태영호 의원께서 별도로 사과를 더 하시든, 정치적 책임을 지시든(해야 한다)”이라고 지적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도 “(윤리위) 징계 논의 대상은 부적절한 발언으로 인한 당의 위신 훼손이나 국민 신뢰 손상(사안)”이라며 “아마 이런(녹취 파문) 부분도 (징계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참고 자료로 언급이 되고, 그럴(추가 징계 사유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기현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분위기도 “태 의원의 거짓말로 당이 갖는 부담이 커졌다. 그냥 묵과할 수는 없는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렇게 당 지도부가 녹취록 부분에 대해 태 의원의 거짓말로 결론지으며 중징계를 검토하며 수습을 하려는 와중에 태 의원의 긴급 기자회견은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먼저 그는 자신과 관련한 일련의 논란에 대해 사과는커녕 ‘태영호 죽이기’라며 정치적 역공세로 태세 전환을 시도해 당 지도부에 또 다른 부담을 안겨 주고 있다.

특히 녹취록 논란에 대해 그는 불법으로 회의가 녹음된 것이 문제의 본질이며 이를 또한 악의적으로 유출해 자신이 피해를 입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당 내부에서조차 “녹취록 파문의 책임은 태 의원에게 있다”며 ‘쉴드 불가’의 분위기다.

먼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징역 2년의 실형까지 받았던 ‘공천 개입’ 문제를 아무리 보좌진이라고 하지만 ‘떠벌린’ 것은 최고위원으로서 당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신의 강남 재공천에만 목을 매는 권력 탐욕이 빚은 대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불법 회의 녹음과 유출의 악의성에 대해 태 의원이 지적하고 있지만 이 또한 ‘보좌진 관리 실패’가 사태의 본질이라는 반응이 많다. 국회 보좌관들은 정치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에 그 누구보다 녹취록 유출의 후유증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내밀한 의원실 전체 회의를 녹음했다는 것은 그만큼 태 의원에 대한 반감과 적개심이 ‘일부’ 보좌관에게 있었다는 얘기다.

북한 김정은 독재정권에서 고위직으로 있었던 태 의원은 민주적 위계질서보다 상명하복식 수직명령 체계에 누구보다 익숙한 사람이다. 과거의 태생적인 권위주의 태도가 한국 정치인으로 금배지를 달았다고 해서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의원회관 국민의힘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태 의원이 평소 보좌관들을 어떻게 대했기에 민감한 회의내용을 녹음해 유출까지 할 생각을 했겠느냐”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 사진=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딸 김주애. 사진=연합뉴스

태 의원의 정치적 지향점에 대해서도 비판이 많다. 그는 기자회견에서 ‘저에게는 김정은 독재 세습왕조를 무너뜨리고 평화통일을 이룰 역사적 사명이 있다’라고 말하지만 그가 최근 보여준 정치 행보는 남북통일이나 국익과는 거리가 멀다. 태 의원은 자신의 ‘전공분야’이기도 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일언반구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주 4.3 사건이나 김구 선생 관련 역사 왜곡 발언으로 불필요한 정쟁을 초래하고 공익과도 거리가 먼 ‘편가르기 식’ 정치공세에만 몰두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존재감을 부풀리기 위해 진영대결을 부르는 센세이셔널한 이슈만 던지며 관종 정치를 일삼는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태 의원은 한국에 온 지 몇 년 안 됐지만 제주 4.3과 김구 선생 관련 왜곡 발언을 보면 한국의 못된 정치행태만 먼저 습득해 교묘히 이용하는 것 같다. 정치를 오로지 개인의 입신양명과 권력쟁취만을 위해 움직이다 보니 대통령실 공천 개입같은 민감한 문제도 보좌진들에게 닦달하며 떠벌리게 되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태 의원은 “북한을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김구 선생이 통일을 위해 노력했다고 하겠지만, 북한의 대남 전략 전술을 아는 사람 입장에서 봤을 때 김구 선생이 김일성의 통일전선 전략에 당한 것”이라며 김구 선생을 맹렬히 비난한 바 있다. 국내에서도 김구 선생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국민의 지도자로 인정받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태 의원의 역사인식은 심각하게 왜곡돼 있다.

그런 김구 선생은 1948년 김일성을 만나러 38선을 넘으며 자신의 애송시를 남겼다.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 (부수호란행) 함부로 어지럽게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간 발자국이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곧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태 의원은 지금 국민의힘 위기 최대 리스크로 떠오르고 있다. 그의 ‘관종 정치’와 무분별한 ‘편 가르기’ 행보는 탈북자에 대한 이미지도 부정적으로 만드는 데 한몫하고 있다. 2만 7천명 탈북자들에게 태영호는 어떤 발자국을 남기고 있는가.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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