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재판 끝에 대법원 “조 회장 건강 문제 없어”
장녀는 ’아버지는 병든 노인‘이라며 반발
재벌가 재산 싸움, 형제 갈등에서 부모까지 끌어들이는 양상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명예회장. 사진=연합뉴스
조양래 한국앤컴퍼니 명예회장. 사진=연합뉴스

세상에서 가장 쓸데없는 걱정이 ‘연예인 걱정’과 ‘재벌 걱정’이라고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재계 순위 40위 권의 한국앤컴퍼니(한국타이어) 그룹의 조양래 명예 회장만큼은 안쓰럽다는 걱정을 지울 수가 없다.

올해 87살인 조 명예회장이 지난 2020년 차남인 조현범 회장(당시 사장)에게 그룹을 물려줄 때만 해도 경영일선에서 벗어나 여생을 여유롭게 보내는 재벌 총수 중의 한 명이 될 줄 알았다. 당시 83살이었으니 적어도 10여 년은 넉넉한 재산으로 삶을 즐길 것으로 부러움을 샀던 것이다.

그러나 경영권을 넘겨준 바로 그 일이 화근이 돼서, 4년 동안 법원을 들락거리며, 자신의 정신상태가 정상임을 증명해야 하는 고초를 겪었다. 최근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정신상태가 문제없음을 판결받았지만, 4년의 고초 끝에 남은 것은 자식과의 절연(絕緣)이라는 비참한 현실뿐이다.

◆ 조 명예회장, 장녀의 한정후견 청구로 4년 동안 수모 겪어

조 명예회장은 2020년 6월 자신이 가지고 있던 그룹 지주사 한국앤컴퍼니 주식 23.59%, 2400억원어치를 차남인 조현범 회장(당시 사장)에게 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이로써 조 회장은 한국앤컴퍼니의 지분 42.9%를 확보하면서 경영권을 승계했다.

그런데 조 명예회장의 이러한 결정에 대해 장녀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건강한 정신상태에서 자발적 의사에 의해 내린 결정이 아니라며 법원에 한정후견 심판 개시를 청구한 것이다.

한정후견은 성년후견의 한 종류다. 과거 금치산, 한정치산 제도를 폐지하고 제도를 보완해 2013년부터 시행되고 있는 제도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본인이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을 법원이 판단해 후견인을 지명하는 제도다.

사진=한국앤컴퍼니그룹
사진=한국앤컴퍼니그룹

한마디로 ‘아버지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법원이 판단해 달라고 청구한 것이다. 그러나 1심 재판부인 가정법원은 조 이사장의 청구를 기각했다. 그러자 조 이사장은 즉시 항고했지만, 항고심 재판부는 서울보라매병원의 정밀 정신감정 결과를 토대로 조 이사장의 이의제기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조 이사장은 재항고를 통해 대법원까지 끌고 갔지만. 지난달 30일 대법원 특별1부는 이 역시 기각했다.

이 과정에서 조 명예회장은 법원에 출석해 자신의 정신상태가 정상임을 입증해야 했고, ’병든 노인‘ 아니냐는 주변 시선에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 상속 다툼, 형제끼리 갈등에서 아버지에 대한 불만 표출로 바뀌어

상속을 둘러싼 재벌가의 다툼은 드문 일이 아니다. 세간에 관심을 끈 것만 해도 삼성가의 이맹희, 이건희 형제가 싸웠고 현대가의 정몽구, 정몽헌 형제도 형제의 난으로 불리는 다툼이 있었다. 또 한화의 김승연, 김호연 형제도 재산 다툼으로 다시는 보지 않을 것처럼 으르릉거렸다. 이밖에도 상속 다툼을 벌인 재벌가는 한둘이 아니고, 밖으로 알려지지 않은 것까지 합치면 싸우지 않고 상속을 끝낸 재벌가는 거의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다만 지금까지는 다툼을 벌여도, 소문이 담장 너머로 퍼지는 것을 경계했고 다툼의 당사자도 형제끼리에 머물렀다. 아버지가 한 자식에게 재산을 몰아주면 원망스럽긴 해도 아버지에게 직접 불만을 표출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이러한 부자간의 도의도 사라지고 있다. 한국앤컴퍼니그룹뿐 아니라 다른 재벌가의 재산 다툼에서도 부친에 대한 성년후견 청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있다. 2016년 롯데그룹의 신동주, 신동빈 형제가 싸우면서도 아버지 신격호 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청구가 있었고 아워홈의 상속 다툼에서도 장남 구본성 부회장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해 성년후견을 신청했다. 상속 다툼에서 이기기 위해서라면 부모님의 정신상태를 문제 삼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세태가 된 것이다.

◆ 장녀, 대법원 기각에 “아버지는 병든 노인”

조희경 이사장은 대법원의 기각 결정이 난 이후에도 아버지를 병든 노인이라며 법원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유감을 표했다. “아버지는 한 번도 병든 노인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사람으로 평가받지 못했고, 재벌 회장으로 숨겨지고 감춰졌다”며 아버지의 정신상태에 문제가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국앤컴퍼니 그룹 측에서는 조 명예회장이 사내 운동시설에서 주기적으로 개인지도를 받고 있고 지난 3월에는 형인 고 조석래 효성그룹 명예회장의 장례식 때 4일 내내 빈소를 지켰다며 건강 이상에 대해 전면 부인했다.

고리타분한 얘긴지 모르지만, 부모는 자식에게 인자하고 자녀는 부모를 존경하고 섬겨야 한다는 부자유친(有親)은 낡은 책 속의 옛말이 된 것 같다. 더구나 부자(父子) 사이에 돈이라는 문제가 개입되면 남만 못한 불신이 똬리를 트는 게 재벌 집안의 현실이다.

파이낸셜투데이 김기성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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