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축소 지향을 넘어 난장판이 되고 있다. 당을 어떻게 살리겠다는 ‘혁신과 비전’보다 ‘구태와 비방’이 난무하고 했다. 오죽하면 오세훈 서울시장이 “총선 패배에 이어 전당대회까지, 집권 여당을 지켜보는 국민들은 실망을 넘어 절망하고 있다”며 “어둠이 깊어가고 있다”고 비판했겠는가.

이번 전당대회에서 대통령실은 표면상으론 엄정중립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3․8 전당대회 때만 해도 김기현 대표 선출을 위해 나경원 의원을 주저앉히고, 안철수 의원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경고를 공공연히 할 정도였다.

그러나 이번에 대통령실은 “국민의힘 전당대회 선거 과정에서 일체의 개입과 간여를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전당대회 과정에서, 각 후보들이나 운동원들이 대통령실을 선거에 끌어들이는 일이 없도록 주의를 기울여 주십사 각별히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이 이렇게 철저한 중립을 선언한 이면에는 ‘김건희 여사 사과 문자 무시’(읽씹)를 둘러싼 공방이 불거졌기 때문이다. 주된 논란은 한 후보가 비대위원장 시절인 지난 1월 김건희 여사의 5차례나 되는 메시지를 무시한 것에 대한 적절성 여부다. 김 여사는 “최근 저의 문제로 물의를 일으켜 부담을 드려 송구하다. 당에서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어떤 처분도 받아들이겠다. 한 위원장님 뜻대로 따르겠으니 검토해 주시길 바란다”고 했다.

비한 측은 김 여사의 사과 여부가 총선 최대 이슈가 되는 상황에서 한 위원장이 이를 무시한 것은 미숙한 정무적 판단이며, 총선 패배의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고 공격하고 있다. ‘문자 읽씹’ 논란은 진실 공방 차원과 선거 개입 차원으로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논란은 김 여사가 “사과를 하겠다”고 했는데 한 후보는 ‘사실상 사과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파악해 무시했다는 것이다. 김기현 전 대표는 “공개된 메시지 전문을 보면 김 여사는 총선 승리에 도움이 된다면 뭐든 하겠다는 내용으로 읽히는데, 한 전 위원장은 어느 대목에서 ‘사실상 사과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파악했다는 것인지, 저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주장”이라며 날을 세웠다.

이에 대해 한 후보는 “그 시점에서 저만큼 보수 정치인 중에서 공개적으로 여러 적극적인 방법으로 (김여사의)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없었다”며 “일각에서 김건희 여사가 사과하고 싶었는데 제가 허락하지 않았다는 것은 상황을 대단히 호도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1차 TV 토론에서 한 후보는 “대통령이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면서 “그 상황에서 제가 사적인 연락에 응했다면 더 심각한 악몽 같은 상황이 되지 않겠느냐”고 했다.

경쟁 후보자들은 김 여사 문자와 관련한 한 후보의 입장이 매번 달라진다고 공격했다. 나경원 후보는 “당사자 얘기를 듣지 않고 소통을 단절한 것은 정치적 판단 미숙”이라고까지 했다. 비한 측은 총선의 최대 쟁점이었던 명품백 문제에 대한 사과 기회를 놓쳐 돌이킬 수 없는 총선 패배 사태를 초래했다고 공격했다.

문자 논란에서 제기되는 의문은 왜 한 후보가 ‘읽씹’했을까이다.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한 후보가 윤석열 대통령과 끊임없이 차별화하고, 김 여사와 어떤 식으로든 얽히지 않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과 같다.

그러나 문자 ‘읽씹’ 논란으로 윤석열 대통령과 한 후보 간에 ‘적대’와 ‘경멸’이 점증하고, 서로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넜다는 것이 확인된 것은 한 후보에게 큰 부담이다. 진실 공방을 넘어 가장 큰 문제는 누가, 왜 이 시점에서 6개월 전 문자를 공개했느냐이다. 김 여사와 한 후보 두 개인 간의 문자가 공개된 것은 결국 ‘한동훈 찍어내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한 후보 측이 “비정상적인 전당대회 개입이고 당무 개입”이라고 비판할 만하다.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과 새누리당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에서 가장 치열했던 선거는 세 차례 있었다.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가 패배한 후 2003년 6월에 치러진 최병렬 대 서청원, 박근혜 대표가 퇴임한 후 2006년 7월에 치러진 강재섭 대 이재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7월에 치러진 김무성 대 서청원 경쟁이었다. 승자는 비주류였던 최병렬과 김무성, 그리고 친이를 상대한 친박 강재섭이었다. 그만큼 변화를 주도하려는 비주류가 강세였다.

반추해 보면, 당시 치열했던 전당대회도 이번 전당대회처럼 배신자, 연판장, 사적 문자 공개 등 음습한 네거티브 공방이 기승을 부리는 진흙탕 싸움은 아니었다. 한 후보는 “축제의 장이어야 할 전당대회에서 당 위기 극복과 전혀 무관한 인신공격과 비방으로 내부 총질을 하고 있지 않는가”라며 “그렇게 당을 망가뜨리면서 이기면 뭐가 남느냐”고 지적했다.

이제부터라도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정상으로 돌아가야 한다. 국민의힘이 ‘무능·무기력·무책임’의 ‘3무 행태’에서 벗어나 경제와 민생을 살리고, 국가안보를 튼튼히 하는 정책 비전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해야 한다. 그래야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고, 국민의힘을 품격 있고 매력 있는 정당으로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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