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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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쌍방울 대북송금 대납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재판부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제3자 뇌물죄’ 재판을 다시 맡게 되자, 담당 판사를 위협하는 글이 확산되고 있다.

매체들에 따르면 친이재명 성향의 시사 방송 ‘새날’은 지난 16일 유튜브 채널에 ‘술 먹은 범죄자의 말도 너그럽게 이해한 판사 신진우’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신진우 판사는 수원지법 부장판사로 지난 7일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으로 구속기소 된 이 전 부지사에게 징역 9년 6월을 선고했다. 신 판사는 쌍방울 대북송금과 관련한 제3자 뇌물 등의 혐의로 기소된 이재명 대표의 ‘제3자 뇌물죄’ 재판도 심리하게 됐다. 우연히 그렇게 배당이 됐다는 법원의 친절한 설명이 있었다. 이 대표 지지자들이 신 판사에 대한 비난과 함께 그의 신변을 위협하는 글을 잇달아 남겼다.

댓글에는 “판사를 향한 범죄가 많아지길 기원한다”, “끝까지 모든 것을 파헤쳐 생을 존재하지 못하게 해야 할 것이다”, “신진우 판사는 탄핵은 물론 생을 매장시켜야 한다”, “사회에서 영구 처단해야 한다” 등 막말과 위협으로 가득했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 팬 카페인 ‘재명이네마을’에는 신 판사에 대한 탄핵 서명 동참을 촉구하는 글이 올라왔다. 20일 한 지지자는 ‘신진우 부장판사 탄핵서명 10만 이상 가자’는 제목의 글을 올리고 신 판사에 대한 탄핵 서명 동참을 촉구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법원을 겨냥해 ‘법왜곡죄’의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언뜻 이 대표에게 유죄를 선고하면 판사를 처벌하겠다는 뜻으로 읽히고 있다.

여기서 판사 증오 혹은 사법 불신의 대표적 사례라 할 석궁 테러 사건을 소환해 보자.

2007년 1월 어느 날. 자신이 재판에서 지게 된 것을 알게 된 한 대학교수가 석궁과 석궁 화살 등을 가지고 판사의 집을 찾아갔다. 이 교수는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던 판사를 습격하였다. 전치 3주의 상해를 입힌 혐의 등으로 기소된 이 교수는 징역 4년의 형기를 마치고 만기 출소했다.

일명 ‘석궁 테러’ 사건의 장본인이자 영화 ‘부러진 화살’의 모델인 김명호 전 성균관대 수학과 조교수. 왜 그랬을까? 그가 해당 사건의 경위를 담은 저서 ‘판사, 니들이 뭔데?’를 출간했다. 이 책에서 김 전 교수는 ‘석궁 테러’ 사건에 대해 법원이 증거조작을 한 재판이라고 주장한다. 또 ‘석궁 테러’를 ‘석궁 시위’라고 표현하며 “판사, 니들 그렇게 까불다가는 뒈지는 수가 있다”는 과격한 표현까지 동원했다.

김 전 교수는 1995년 대학별 입시 수학 문제에 오류가 있다는 주장을 제기한 뒤 재임용에서 제외되자 소송에 나섰었다. 그는 “1+1=3이라는 법원 판단도 승복해야 한단 말인가? ‘괘씸죄’라는 되지도 않는 말이 공공연히 나돌고, 입시 출제의 오류를 지적한 교수의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사들이 판치는 나라가 법치국가라고? 웃기는 소리 작작 해라. 대한민국은 법치국가가 아니다”라고 절규했다.

김 전 교수의 ‘석궁사건’ 항소심을 맡았던 박훈 변호사도 판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재판의 공정성은 법관의 ‘예단 배제’에 있다는 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다. 그리고 헌법과 형사소송법에도 ‘무죄 추정 원칙’을 명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수장들이 이미 이 사건에 대해 유죄의 심증을 가지고 (김 전 교수를) 엄단하겠다고 하였으니, 이 사건에 대해 어찌 우리나라 사법부가 공정한 재판을 할 수 있겠는가”

“사법부는 이미 사법부가 아니었고 ‘신성한’ 법정은 시정잡배들이 폭력을 휘두르는 추악한 장소보다 더 못한 곳이었다. 그곳은 법정이 아니었다”

대한민국에서는 이미 판사들이 낯을 들기 민망한 수치스러운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21년 2월 사법 농단 사건에 등장하는 임성근 부장 판사의 탄핵 소추안이 의원 179명의 찬성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현직 판사를 탄핵하는 국회 소추안 통과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해당 판사가 법원 조직에서 발생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을 벌였다는 점이다. 그는 대법원장과 대화를 나누면서 몰래 녹음을 해 두었다가 이를 뒤에 공개했다. 듣는 사람의 귀가 의심되는 기가 막힌 일이었다. 여야가 상대 당을 비난하는 논평전을 벌였지만, 사실 이 문제는 정쟁의 대상이 아니었다.

판사들에 대한 평가가 추락하는 와중에 법원이 최근 치명적인 ‘에러’를 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이혼 판결에서 사실관계를 잘못 판단한 끝에 ‘판결문 경정’이라는 큰 오점을 남겼다. 판사가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줬다. 세기의 재판이라고 해서 결과가 파장이 있을 거란 걸 모를 리 없었을 텐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한 것이다. 재산 분할 액수가 많다 보니 기업의 생존여부 문제가 대두됐고 부정한 권력자의 검은돈 상속 문제도 새롭게 조명을 받게 됐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갈림길에 섰다. 법관은 사법개혁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되었다. 법조 3륜(三輪) 중에 마지막 남은 사법부마저 흔들리고 있다. 이제 법원을 두고 더는 결점과 오류가 없는 조직이라고 보는 이는 없다. 사법연감은 2022년 1년 동안 1만4700여 건의 판결 ‘경정’(수정) 신청이 접수돼 그중 1만1700여 건이 인용됐다고 기록하고 있다. 법원과 판사에 대한 신뢰가 이러면 어떻게 되나?

김명수 대법원장 테러와 양승태 대법원장 재판이 보여준 사법부 수장들의 굴욕은 한국 사법부의 위상을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헌법적 가치와 법조계의 특권의식, 법조윤리 붕괴에 대한 불신이 분노와 함께 분출되고 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사법제도에 회의가 일고 있는 것이다.

재판은 어렵다, ‘솔로몬의 재판’이 그걸 웅변해 오지 않았던가. 우리 사회는 이미 ‘인혁당 사건’을 통해 ‘사법살인’의 추악한 민낯을 똑똑히 본 바가 있다.

신이 아닌데 신처럼 행동하는, 결과를 내놓는 판사가 문제다. 과학과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인류는 이미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외치고 있다(리처드 도킨스). 판사가 신인가? 정의의 보루라는 말이 공허해진 지 오래다. 우리 공동체에, 아니 인간 삶에 어떤 시스템이 가능할까? 권한을 안 줄 수도, 마냥 줄 수도 없는 이 딜레마를 어찌할 것인가.

“니가 뭔데” 소리가 안 나올 장치가 필요하다. 그 건 정쟁(政爭)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연구와 토론이 필요한 문제다. AI가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소송 당사자 간의 주장과 증거를 제대로 제공하면 사람보다 AI판결이 훨씬 지순지고할 수 있을 것이다. 3심 중 2심에서 우선 AI판결을 도입해 보면 어떨까.

의사보다 더 환자를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하는 AI의사가 등장한 지 오래다. AI아나운서, AI가수가 일반에 친숙해진 지도 꽤 됐다. 웃을 일이 아니다. 곧 현실이 될 수 있다. 운전면허의 경우도 컴퓨터가 당락을 판정하지, 사람이 이러쿵저러쿵 개입하지 않는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그룹(SBG) 회장은 21일 “인간 지능의 1만 배에 달하는 초인공지능(ASI)을 10년 정도 뒤에 실현(實現)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대를 가져보자. AI는 최소한 편견이나 정파적 진영논리, 감정에 휩쓸리는 판결을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판사, 니들이 뭔데?’ AI가 웃을 날이 가까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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