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개봉작

영화 ‘원더랜드’ 스틸컷.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영화 ‘원더랜드’ 스틸컷.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리뷰》

김태용 / 한국 / 113분 15초 / 5월 31일 언론배급시사회 / 메가박스 코엑스

죽은 사람을 인공지능이하 AI으로 복원하는 원더랜드 서비스가 일상이 된 세상. 바이리탕웨이 분는 어린 딸에게 자신의 죽음을 숨기기 위해, 정인수지 분은 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태주박보검 분를 기다리고자 각각 본인과 연인을 원더랜드에 복원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의식 불명인 태주가 기적적으로 깨어나고, 정인은 사고事故 후 달라진 실제 태주와 원더랜드 AI 태주를 서로 비교하며 점차 그에 대한 애정이 식어 가는 것을 느낀다. 한편 바이리는 딸과 친구 같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갑작스러운 서비스 종료로 이 결과 시스템에 큰 혼란이 발생하는데⋯.

죽은 사람으로부터 걸려 온 영상 통화. 사자를 생자로 돌이키는 이 AI의 마법을 당신은 수락할 것인가? 혹은 거절할 텐가?

마침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의 메멘토 모리Memento Mori가 부제인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가 그의 장편 데뷔작이다.

김태용 감독의 신작인 ‘원더랜드’는 가족애와 이성애 그리고 모성애로 구분되는 일종의 옴니버스 영화이면서, 이 세 분류의 사랑이 죽음 또는 죽음에 준하는 종결을 맞았을 때 개인은 AI에 어떤 이익을 편취할 것이냐를 묻는 이른바 ‘초현실’의 영화다.

무엇보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기 힘든 근미래 AI는 ‘수동적’ 사물이 아닌 ‘능동적’ 행위자인 비인간이고, 이것이 인간과 동등한 존재임을 증명하는 포스트휴머니즘적 영화로 규정하는 게 더 옳기도 하다. 오랫동안 인간은 사물을 물건으로만 한정했는데 기술의 발전과 영화적 맥락이 그 한계를 깨부순 셈이다.

물론 명령하고(“노래해 봐”) 불통하며(“내가 왜 네 엄마야”) 비인간인 AI를 ‘삶에 도움 되는 도구’로만 한정하는 태도도 얼핏 등장한다.

그럼에도 원더랜드 운영자인 해리정유미 분는 고작 0과 1로 이루어진 존재일 뿐인 한 AI에게 이만 서비스를 종료하겠다고 알리면서 동시에 “행복”을 빈다. 그를 일개 파일이 아니고 인간과 동등한 객체로 인정한다는 의미의 상징적 장면이다.

그렇게 이 영화의 주제 격인 대사도 원더랜드 AI인 성준공유 분에게서 시작된다.

타 AI를 감독하는 역할인 성준은 유독 “인생은 꿈일 뿐”이라는 말을 반복한다. 과거의 현생이지만 이것을 착각해 자꾸 다른 내가 보인다는 AI한테 ‘저어라, 저어라, 배를 저어라’라는 제목의 동요를 부르는 식이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쓴 영국 작가 루이스 캐럴의 시 ‘인생은 꿈일 뿐Life is but a dream’에서 따온 이 노래에는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즐겁게, 인생은 꿈일 뿐”이란 가사가 있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지, 아니면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를 따지는 호접지몽처럼 무엇이 진짜고 가짜인지는 더는 중요하지 않다는 내용의 대사인 것이다.

AI를 인간처럼 대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의 세상에서 “라이프”와 “드림”을 가르는 일은 이제 무의미하며 불필요한 구분임을 일갈하는 말이기도 하다.

성준의 달관론은 정인이 사고로 아직 정상이 아닌 태주에 하는 “너 원래 안 그래”에까지 이어진다. 하물며 진짜인 사람도 계속 변화해 원래와 다른 가짜처럼 느껴지는 가운데, 과연 가짜 같은 진짜를 진짜처럼 대하지 않아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해석 가능한 부분이다.

혹자는 이렇게 반문할 수 있겠다. 사물이 아무리 인간과 동등하더라도 결국 이 영화 속 AI는 영상 통화로만 만날 수 있는 게 아니냐고. 때마침 극 중 또 단서가 나온다. 정인도 병원에서 퇴원한 태주에게 같은 말을 한다. “만지니까 좋다, 더 만져야겠다.”

그럼 이런 가정은 어떨까? 만약 이 AI가 화면 밖으로 나와 로봇으로 움직인다면? 그래서 AI가 더 사람 같아진다면? 그리하여 만지니까 좋고 더 만지고 싶은 존재가 된다면?

더 이상 사물은 도구나 물건, 인간 외의 것뿐만이 아니다. 비인간이 사물이면 인간도 사물, 이처럼 물질세계 모든 존재가 사물이다. 기존의 위계는 무너지고 같은 사물인 인간도 비인간도 상호 공생해야 할 시대가 오고 있음을 김 감독은 이 영화로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묻는다.

“…감독 김태용은 포스트휴머니즘의 꿈을 꾸는가?”

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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