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지난 22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당론으로 어렵게 정한 법안들을 개인적인 이유로 반대해 추진이 멈춰버리는 사례를 몇 차례 봤다. 그건 정말 옳지 않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소한 모두가 합의하고 동의한 목표에 대해서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의 양심상 반하는 것이 아니라면 따라주는 것이 바람직하다”라는 이유도 들었다. 이런 언급은 얼핏 맞는 말처럼 들린다. 그런데 이런 언급을 자세히 생각해 보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국회의원은 헌법기관’이라는 관점에서 해당 언급을 생각해 봐야 한다. 헌법 및 헌법재판소법의 관련 조문을 해석해 보면, 국회의원은 헌법재판소 권한쟁의심판의 청구당사자로 인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는 헌법기관으로써의 국회의원의 지위가 인정됨을 의미한다. 헌법기관은, 다른 헌법기관을 포함한 그 어떤 존재에 의해서도, 그 ‘기능’이 강제로 무력화될 수 없다. 여기서 말하는 ‘기능’은, 소신에 의한 정치적 행위도 당연히 포함한다.

즉, 헌법기관으로써의 국회의원의 독립적 판단과 행위는 당연히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헌법 제46조 2항은 “국회의원은 국가이익을 우선하여 양심에 따라 직무를 행한다”라고 명기하고 있는데, 이는 국회의원의 독립적인 정치 행위와 정치적 판단을 헌법 차원에서 명문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당론’과의 관계가 대두된다. 국회의원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과 당론이 다를 경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인데, 이는 다수결에 의해 당론이 결정되면 결과에 순응하는 것이 민주주의인가 하는 문제와도 직결된다. 여기서 먼저 지적하고자 하는 점은 민주주의의 가치란, 과정의 정통성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의 의견도 배제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이다.

즉, 국회의원이 특정 정당 내에서 소수 의견을 제시했을 때, ‘당론’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배척하면,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소수 의견이 배척되면 다양성이 사라져, 민주주의가 자랄 수 있는 토양이 부실해진다는 것도 문제다.

둘째, 다수결이라는 것은 민주주의를 구현하는 수단이지, 민주주의 가치 그 자체는 아니라는 점을 들 수 있다.

셋째, 외국의 경우도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는 원내대표를 두고 있다. 원내대표 이전에는 ‘원내총무’라는 직책을 뒀었다. ‘원내총무’가 ‘원내대표’로 격상될 당시, 가장 많이 나왔던 말들이 미국식 ‘원내정당화’였다. 미국처럼 원내 중심 정당으로 탈바꿈하겠다는 포부를 내세운 것이다. 미국 정당 체계의 핵심 중의 하나는 의원들의 ‘독립성’ 보장이다. 미국 하원에서는 이른바 ‘크로스 보팅’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소신 투표’를 하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

반대로, ‘이념 정당’적 성격이 상대적으로 강한 유럽 정당에서는 당론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이런 식의 정당 운영이 드물어진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유럽과 미국의 추세는, 의원들의 개별적 판단을 최대한 존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는데, 당론으로 정해지면 따르라고 말하는 것은 이런 추세에 반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우리나라의 이런 ‘분위기 형성’에는 언론도 일조했다. 당론에 반해 투표한 의원들을 향해, ‘반란표’ 혹은 ‘이탈표’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의원들이 당론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론도, 의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용어’를 선택해야 한다.

만일 채 상병 특검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고, 재의에 붙여져, 국민의힘에서 특검 찬성표가 나오기라도 하면, 여기에 민주당은 어떤 평가를 내릴까도 궁금하다. 채 상병 특검에 찬성하는 여론이 높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는 별개로,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부결을 결정한 상황에서 찬성표가 나온다면, 민주당은 이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릴지가 궁금하다는 것이다. 당론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면, 설령 여론에 반하는 당론이라도, 이에 따르는 것을 당연시해야 하고, 그래서 찬성표를 던진 국민의힘 의원들을 비판해야 논리적으로 타당하다.

하지만, 상대 정당 의원들은 독립적으로 판단해야 하고, 자당 의원들은 당론에 따라야 하는 식의 주장을 한다면, 여기에는 합리성도, 논리성도 찾아볼 수 없게 된다. 만일 상대 정당의 주장은 모두 문제 투성이인 사회악적 주장이고, 자신들은 옳은 소리만 말한다는 논리를 전개하면, 여기에 동의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정치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 구도가 지배하는 존재는 아니다. 권력적 현상일 뿐이다. 단지 표를 받아야 권력을 잡을 수 있기에, 국민에게 잘 보이려고 할 뿐이다. 그렇다고 정당이나 정치인이 선해지는 것은 아니다. 자신들이 절대 선이 아닌 이상, 최소한의 논리적 타당성을 갖는 언행을 해야 한다. 한번 기대해 보겠다.

<외부 필자의 기고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