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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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들이 새로 뽑히고 국회의 구도가 바뀌었다. 다음 달이면 말도 많고 싸움도 많았던 21대 국회가 막을 내리고 새로운 국회가 출범하게 된다. 국민적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크다.

4.10총선 결과는 사실 일찍이 예견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압승을 거두고 국민의힘이 참패했다. 조국혁신당이라는 새로운 결사체가 괄목상대(刮目相對)할 제3세력으로 등장한 것도 특기할 만하다.

될 사람 되고 떨어질 사람 떨어졌다는 말로 가름되는 게 선거 결과다. 이번 선거 역시 같다. 민심은 천심이라 했다. 가혹한 결과가 연출됐다. 이재명과 조국의 승리이자 윤석열과 한동훈의 패배, ‘민심의 어퍼컷’이라고 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국민의힘은 왜 패했는가?

분석가들은 윤석열 정권이 2년의 실정은 차치하고라도 최근 불거진 ‘도주대사’, ‘회칼수석’ 논란에 고물가 경제난 등으로 이미 국민들의 주먹다짐을 기다리는 형국에 처해 있었다고 진단한다. 여당에 우호적이지 않은 선거 분위기 속에 의대 증원 문제로 국민을 고통 속에 방치한 것도 매의 숫자를 더했다.

윤석열 정부와 집권 여당은 그동안 어떤 모습이었는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퇴행적 구태를 연출한 끝에 오늘의 결과를 낳았다는 평이다. 싸늘해질 대로 싸늘해진 국민들의 시선을 알아보지 못하고 자신들만의 헛구호를 외치고 허공에 삿대질을 해왔다. 함부로 어퍼컷을 날린 후과다. 무례하고 불경한 제스쳐다. 누가 누구를 향해 어퍼컷을 올려야 하는가. 민망하다. 국민의 눈높이에 한참 못 미치는 안목으로 정치를 해왔다는 평가다. 집권 세력이 혀를 차고 있던 국민들의 의중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는 것이다. 대통령과 국힘 진영에서 그토록 좋아했던 어퍼컷이 결국 그들을 향했다.

돌이켜 보면 21대 국회는 말이 국회지 국민의 대의기관이 아니었다. 어떤 현안을 놓고 서로 머리를 맞대고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탤런트처럼 허구한 날 텔레비전 화면에 나타난 모습이라곤 ‘비호감’이자 ‘진상’ 그 자체였다. 1년 전 2년 전, 엊그제 모습들이다. 유권자들이 벼르고 있는 걸 모른 채 반대를 위한 반대와 명분 없는 사보타지로 날을 샌 것이다. 국민들 마음이 편할 날 있었겠는가. 22대 국회는 이런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 철저히 탈바꿈해야 한다.

이제 선거는 끝났다. 여든 야든 모두들 평정을 되찾고 일상으로 돌아갈 일이다. 비등점을 향해 끓어 올랐던 열기(熱氣)를 식혀야 한다.

야당은 총선에서 승리를 거뒀지만, 결코 자만해선 안 된다. 잘해서 이긴 게 아니지 않은가. 민주당은 우선 두 쪽으로 갈라진 국민들을 통합하는 노력을 솔선수범해야 한다. 남북분단도 국민의 한이 되고 있는데 대체 이게 무슨 꼴인가. 외신도 주목한 게 있다. 바로 선거운동 과정에서 드러난 한국의 깊어지는 분열상이다. AP통신은 “선거 수개월 전부터 보수와 진보는 서로 인신공격을 계속해 왔다”면서, “이는 깊어지는 (국가) 분열의 징후”라고 지적했다. 무서운 말이지 않은가.

진영화되고 있고 극단화되고 있는 나라의 정치 지형을 바로잡아야 한다. 아울러 도탄에 빠지고 있는 국가경제를 살리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야 가릴 것 없다. 클린턴이 일찍이 꿰뚫어 봤다. 92년 미국 대선을 풍미했던 한마디.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대파 한 단이 875원?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계와 기업, 국가 경제의 재활에 집중해야 한다. 이 과정에 교만과 오만, 자신들만 옳다고 우기는 교조주의(敎條主義)가 끼어들어서는 절대 안 될 일이다. ‘미운 여당이 못난 야당 덕에 먹고 산다’는 말을 더 이상 들어서야 되겠는가. 엄중하다.

여당에도 바란다. 지금까지 해 오던 대로 시대정신을 외면한 채 퇴영적 진영논리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분석가들은 국힘의 참패는 국민이 윤석열 대통령의 불통 정권에 대해 준엄하게 심판한 결과라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동안 국민들의 혈압을 올린 데에 대해 징벌적 투표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합리적 보수는 온데간데없고 수구적 흑백논리에 갇힌 채 광신적 과거회귀 세력과 연대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국정운영 포기 선언이다. 뼈를 깎는 자성으로 뿌리부터 확 바꾸어야 한다. 환골탈태의 새로운 보수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된다. 태극기가 아닌 멋진 보수, 그게 그렇게도 힘든가.

21대 국회 임기는 한 달여 뒤 종료된다. 4.10총선을 통해 새로 개편된 국회는 다음 달 30일부터 22대 임기를 시작해 2028년 5월 29일까지 만 4년 동안 대한민국의 의정을 맡게 된다. 이에 발맞춰 ‘용산’이나 집권 여당에서도 국가경영의 새로운 틀을 갖추길 기대해 마지않는다. 여야 모두 대오각성과 함께 협치와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일제 식민 지배와 남북분단, 군부독재와 민주화 투쟁 시기를 거쳐오면서 숱한 갈등과 분열, 충돌을 경험했다. 그 결과 구성원 간 혹은 공동체 내부에 많은 ‘미제(未濟)’와 ‘오류’, ‘불의’를 해결해야 할 과제로 안고 있다. 권력기관 갈등 문제를 비롯해 재벌과 노동, 정치, 교육 등등 사회 각 분야에 바로잡아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무엇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겠지만 그중 첫째는 정치개혁이다. 바로 국회 개혁이다. 국회는 국민 생활의 모든 영역을 통어(統御)하는 국가의 입법기관이다. 국회가 ‘국민대표회의’(國民代表會議) 다운 기능과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데는 제도개혁이 필수다. 그동안 뜻있는 여러 시민단체나 학자들, 정치권에서 주장했던 개혁 과제들을 보자.

급선무는 뭐니 뭐니 해도 국회의원직에 대한 ‘대우’ 축소. 국회의원의 대우를 장차관급에서 국가직 공무원의 ‘국장급’으로 낮추자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되면 중소기업 하나 창업하는 것보다 ‘남는 것’(margin)이 많다는 계산이 나오다 보니 사생결단의 경쟁과 정쟁이 나라를 뒤집어 엎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이 진영으로 나뉘어 서로 원수가 되는 현상이 정상인가. 나라의 힘과 권세를 다 가진,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다들 앞을 다투어 여의도로 몰려들고 있는 이유를 없애야 한다.

필요 이상으로 지급되고 있는 세비(歲費)도 반으로 줄이고 보좌진 수도 지금의 1/3수준인 2-3명으로 줄여 거품을 뺄 필요가 있다. 국회 전문직을 크게 늘려 전체 의원들이 ‘풀(pool)’로 활용하면 ‘입법 생산성’이 훨씬 좋아질 거라는 게 지금까지의 평가다. 국회의원직이 ‘대박’과 거리가 먼, 이문과 특권이 많지 않은 신분이 되면 그에 따라 ‘고매한’ 사명의식을 가진, 능력 있는 애국시민들이 의사당의 주역이 되는 정치판의 ‘역(逆) 그레샴의 법칙’이 나타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다음으론 국회의원의 선수(選數) 제한이 필수라는 것이다. 의원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회의원직이 10년, 20년의 생계형 일자리가 되다 보니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온갖 경쟁과 이전투구가 사생결단으로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단임제이고 지자체장들도 3선까지만 할 수 있도록 한 이유가 있듯 국회의원도 선수 제한을 둬야한다. 2선 혹은 3선까지만 가능케 하면 우리의 정치풍토가 획기적으로 변할 것이다. 다선을 자랑하는 지금의 의원들보다 능력 있고 양심적이고 애국적인 인사들은 국민들 사이에 있을 만큼 있다. 국회가 일부 인사들에게 ‘챙길 게 많은’ 평생직장으로 전락하면서 ‘만악’(萬惡)의 씨앗이 되고 있다.

의안 의결(議決) 문제도 국민들이 큰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이다. 국회법에 명시된 대로 다수결의 원칙을 지키자는 것이다. 동물, 식물국회라는 말들이 왜 나오는가. ‘민의’(民意)를 팔지 말고 ‘민의’대로 하는 국회가 되면 된다. 독립된 헌법기관임을 그렇게도 강조하는 사람들이니만큼 각자 소신껏 투표하고 그 결과를 수용하라는 것이다. 대명천지에 무슨 우격다짐인가. 결과가 억울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들의 뜻을 펴려면 유권자들, 바로 국민들의 마음을 얻어 다음 선거에서 승리하면 될 일이다. 민주주의가 다른 게 아니다.

거듭 강조하거니와 22대 국회는 개원하게 되면 무엇보다 먼저 우리 국회를 새롭고 멋진 ‘민의의 전당’으로 만드는 일에 천착해야 한다. 외부에서 나서기 전에 스스로 멋지게 개혁해 주길 바란다. 국회 운영과 관련된 일부 기술적인 문제들은 후순위 과제다. 진정한 국회 개혁이 무엇인가에 주목하기 바란다. 정치가 4류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300명 선량들의 충정을 기대한다.

우리 국민들도 이제 반듯한 정부, 반듯한 법원, 반듯한 국회를 가질 때가 됐다. 22대 국회가 끝나는 4년 후 또 그들을 비난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돼서는 안 된다. 국회의원들이 제 몫을 다하면 그 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 일도, 광화문이나 여의도로 몰려갈 일도 없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여의도에 입성한 22대 국회의원 당선자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축하를 보낸다. 그리고 잊어서는 안 될 한마디 더. ‘민심(民心)의 어퍼컷(uppercut)’은 준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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