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렬 용인대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최창렬 용인대학교 특임교수.

“4월 총선은 제2의 건국전쟁이다.”

국민의힘에서 나온 발언이다. 선거를 ‘전쟁’으로 보는 인식도 인식이려니와, 이 발언의 연원이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에 기인한 것이라는 점에서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다. 국민의힘 인사들이 이승만 초대 대통령에 대한 기록인 이 영화를 관람 인증샷을 올리는 등 여당 지도부가 ‘건국전쟁’을 4월 총선에서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한 전략으로 활용하려는 기류가 역력하다.

역사나 정치에 관한 영화는 관점과 입장에 따라 많은 논란을 야기한다는 특성을 갖는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이념적 성향의 차이가 진영 간의 대립으로 이어지는 ‘진영정치’에서 이러한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확증편향에 기반한 대결의 정치가 일상화된 상황에서 영화는 진실과 역사에 대한 천착보다 이데올로기적 대립을 강화시키기 일쑤다.

역사적 인물에 대한 평가는 일방에 의해 재단될 수 없다. 특히 공과가 뚜렷한 인물에 대해 균형 감각을 상실하고 좌우 대립의 관점에서 조망하는 행위는 위험하다. 역사를 권력정치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자 주관적이고 일방적인 평가와 해석에 의존한다면 필경 역사 왜곡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역사적 진실이 정치세력의 편견에 의해 가려지고,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것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이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공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정치적으로도 좌파와 우파 사이의 이념적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는 논쟁적 인물이다. 민주화 세력과 좌파의 관점에서 이승만은 독재자일 뿐이고 권력 유지를 위해 폭력 동원을 주저치 않았던 반민주적인 인물이다. 반면에 우파의 입장에서 이승만은 건국의 아버지이고 한미동맹의 밀알을 제공한 추앙받아야 할 인물이다. 양측의 해석이 조금씩 일리가 있다고 치자. ‘건국전쟁’에서 제시된 내용들도 진실의 측면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다큐멘터리는 균형감각을 유지할 때 기록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제작자나 감독의 입장이나 관점을 관철시키기 위해 부정적인 면을 애써 언급하지 않고 기록한다면 이는 ‘다큐’가 아닌 ‘의도된 기획’일 수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 농지개혁 등은 논란의 여지는 있지만 나름대로 긍정의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특히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은 이 두 사안에 대한 이승만의 치적을 높이 산다.

이에 대한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분명한 사실은 이승만은 민주주의에 반(反)하는 독재의 전형을 보여준 인물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1952년의 발췌개헌은 한국전쟁의 와중에 부산에서 국회의원을 감금한 채로 통과됐다. 이른바 역사가 ‘부산정치파동’이라고 부르는 사건이다. 이승만은 권력연장을 위해 1954년의 사사오입 개헌을 관철하고, 반민족행위특별법을 무력화했으며 반민특위를 해체한 장본인이다. 이승만은 1960년의 3·15 부정선거를 응징한 4·19혁명에 의해 하야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은 역사적 평가가 끝난 사건들로서 ‘건국전쟁’이라는 영화가 이 부분을 다루지 않았지만, 이승만이라는 인물에 대해 부정적 측면이 같이 조명되어야 한다. 물론 이승만의 해외독립투쟁을 과하게 폄하하는 행위 역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모든 일에는 긍정과 부정이 있다. 역사는 더욱 그렇다. 역사학자가 아닌 정치인들이 역사를 일방적으로 재단하면 역사는 정치에 종속되는 최악의 결과를 맞게 된다. 정치적 사건을 다룬 영화가 완전히 사실을 기반으로 할 필요는 없다. 팩트와 픽션을 배합하여 영화적 재미와 인문학적 상상력을 가미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픽션을 가미한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사실을 외면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건국전쟁’의 관점이나 내용과 관계없이 국민의힘이 이 영화를 4월 총선에서 지지층 결집에 이용하려 하는 의도를 마냥 비판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과도하게 특정 인물의 한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부족주의가 아닐 수 없다. 역사를 대하는 경외감과 겸허함과도 거리가 멀다. 역사적 인물에 대해 공(功)과 과(過)를 균형적으로 조망하고 해석하는 것이 변화와 개혁의 첫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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