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 청주방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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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도대체 무엇을,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국가인가?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이상향 건설인가 김일성주의의 완성인가? 소위 민주국가라는 나라 중에 통치자가 3대에 걸쳐 세습으로 이어가는 나라는 이 지구상에 없다. 북한을 사회주의 국가가 아니라 봉건왕조 국가라고 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폭언이라는 폭언은 다 동원해 대한민국을 모욕하고 협박했다. 김정은은 지난 15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헌법에서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 같은 표현을 삭제하고 한국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 ‘불변의 주적’으로 간주하도록 교육하는 내용을 반영하라”고 지시했다. 북한은 이날 남북 회담과 교류 업무를 담당하는 조평통과 민족경제협력국, 금강산국제관광국을 폐지했다.

김정은은 무력통일에 대한 야욕도 드러냈다. “헌법에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 평정, 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반영하라”고 했다. “통일 개념을 완전히 제거하라”면서도 ‘김정은식 무력통일 노선’을 공식화한 것이다.

겁먹은 개가 짖는다는 동물전문가들의 연구가 있다. 인간의 경우도 동물과 다르지 않다. 상대에 대해 극도의 험담이나 적개심을 표현하는 것은 ‘공포의 자백’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라는 것이다. 김정은은 “공화국이 대한민국은 화해와 통일의 상대이며 동족이라는 현실모순적인 기성개념을 완전히 지워버리고 철저한 타국으로, 가장 적대적인 국가로 규제한 이상 주권행사 영역을 정확히 규정짓기 위한 법률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주민들이 ‘삼천리금수강산’, ‘8천만 겨레’와 같이 북과 남을 동족으로 오도하는 잔재적인 낱말들을 사용해서는 안되고, 헌법에 있는 ‘북반부’, ‘자주, 평화통일, 민족대단결’이라는 표현들이 이제는 삭제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은 특히 “북남교류 협력의 상징으로 존재하던 경의선의 우리(북한)측 구간을 회복불가한 수준으로 물리적으로 완전히 끊어놓는 것을 비롯하여 접경지역의 모든 북남 연계 조건들을 철저히 분리시키기 위한 단계조치들을 엄격히 실시해야해야 한다”라고도 강조했다.

김정은은 “만약 적들이 전쟁의 불꽃이라도 튕긴다면 공화국은 핵무기가 포함되는 자기 수중의 모든 군사력을 총동원하여 우리의 원수들을 단호히 징벌할 것”이라고도 했다.

반민족적이고 비인간적인 패륜도 서슴지 않겠다는 그의 머릿속이 절망감을 안긴다. 그 잘난 자신의 할아버지, 김일성의 오판 하나로 얼마나 많은 민족이 희생당했는가. 동족상잔의 기억이 그대로 살아있는 지금 손자가 다시 핵무기를 쓰겠다니 지금 그가 정상적인 사고의 소유자인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핏줄의 일원이라는 게 원통하다. 결국 그는 남북 모두의 의지로 참수시킬 수밖에 없는 망나니인가. 철천지원수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핵무기 문제만 해도 그렇다. 사실 핵무장을 하기로 하면 남한이 북한보다 뒤질 게 뭐 있겠는가. 기술이 모자라는가 국부가 딸리는가.

미국 군사력 평가기관인 글로벌파이어파워(GFP)가 이달에 내놓은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군사력 평가지수에서 145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5위를 기록했다. 병력 규모와 육·해·공군의 무기체계 보유량, 전시 동원 가능 인력·자산과 국방 예산 등의 지표를 활용해 산출한 것이다. 1위는 미국이었고 2위는 러시아가 차지했다.

한국은 지난해 GFP 평가 때보다 순위가 한 계단 상승해 아시아에서는 중국(3위)과 인도(4위)에 이어 세 번째 순위에 올랐다. 영국과 일본은 각각 6위와 7위. 반면 북한의 GFP 군사력 순위는 계속 하락 추세다. 북한은 지난해 34위에서 올해는 36위로 두 계단 내려갔다. 물론 어느 나라도 실전에서는 사실상 쉽게 쓸 수 없는 핵무기 전력을 제외한 평가다.

트럼프가 대선에서 승리한다고 해서 북한에 꼭 유리한 국면이 조성될까? 국제질서와 국제외교란 건 불변함수가 아니다. 북한이 잔재주를 부릴 때가 아니다.

북한은 2020년 6월에도 세계가 놀란 충격적인 일을 벌였다.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머지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고한 뒤 만행을 저질렀다. 어쩌겠다는 것인가. 역사를 후퇴시킨, 참으로 어이없는 도발이었다. 김정은 남매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두 사람이 했을까. 실로 안타까운 일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건물이 무슨 죄가 있나.

남북공동연락사무소가 어떤 곳이었던가. 남북 간 교류협력의 상징이자 소통의 공간으로 건립·보수에 우리 예산 170여억 원이 들어간 남북의 자산이다. 그동안 보여준 문재인 대통령의 ‘선의’가 무색해졌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우리 국민 모두가 유린당했다.

북한 측은 “북남 합의에 따라 비무장화된 지대들에 군대가 다시 진출해 전선을 요새화하는 조치를 취하겠다”라고도 했다. 그 건 그들의 자유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할 수밖에.

미국도 발끈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기존 경제제재를 1년 더 연장하며 북한을 ‘비상하고 특별한 위협’으로 재규정했다. 그냥 두고 보고 있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북한이 ‘정상’(正常)국가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 세계에 거듭 보여준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제공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전 정권의 치적을 휴지통에 처박거나 뒤집기를 반복해 온 끝에 대북정책의 영속성을 갖지 못한 것이 우선 아쉬운 점이었다. 그러다 보니 남북관계가 진전을 보지 못하고 쳇바퀴 돌 듯 제자리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도발의 빌미가 됐던 ‘삐라’ 문제도 그렇다. 북한으로 보내지는 ‘삐라’는 벌써 단속을 해야 했다. 대북 전단은 북의 ‘존엄’인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비판하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다. 형을 죽인 패륜아라거나 그의 모친이 백두혈통이 아닌 후지산 혈통이라는 것 등 북 정권을 자극하는 내용들이다. 북의 입장에서 보면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 사소하고 좁은 식견으로 대사를 그르쳐서는 안 된다. 백두혈통이면 어떻고 후지산 혈통이면 어떻다는 얘긴가. 괜한 시비로 긁어 부스럼을 만들 이유는 없는 것이다.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짓이다. 김경협 의원의 말처럼 ‘삐라’ 살포는 “한반도의 분단과 긴장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경제적 이득을 취하려는 ‘분단 장사들’, ‘무기 장사들’의 영업 논리”외 아무것도 아니다. 접경지역 주민들의 반대가 아니라도 ‘삐라’ 공격은 ‘가성비’가 낮은 하책(下策)이다.

북측은 앞으로도 무슨 해괴한 일을 더 벌일지 예측불가다. 70여 년간 분단 상태에 있는 한반도는 세계가 주목하는 시한폭탄이다. 협력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양쪽이 자제와 대화를 견지하면서 평화 상태를 유지할 지혜가 필요하다. 그런 만큼 양측의 상호신뢰는 필수다. 신냉전 시대를 맞아 남북은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어리석은 판단으로 역사를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

북한이 어떤 나라인가. 국제사회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정말 못난, ‘짜증 나는 퀘스쳔 마크(question mark)’로 치부해 오고 있는 나라가 아니던가. 대명천지에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살면서 1인 왕조의 모습을 보이는 것부터 그렇다. 기껏 30대를 갓 넘긴 김정은의 현장지도 장면을 보자. 60대 70대 노장들이 고개를 굽신거리며 수첩에 손아랫사람의 ‘말씀’을 적어대는 ‘적자’생존의 구차하고 민망한 장면들이 연일 연출되고 있다. 아직 이마에 솜털도 가시지 않은 열 살 남짓의 어린애(김주애)에게 거수경례를 하고 주억거리는 북한 고위 간부들을 보기도 낯 뜨겁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족으로서 북한에 대해 큰 연민을 가져왔다. 그런 만큼 이번 북한의 도발에 대해 국민적 실망이 크다. 국민들이 느끼는 모멸감과 낭패감, 배신감이 워낙 크다. 충격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트럼프 말대로 ‘똑똑하다’는 그가 트럼프의 재선을 예상하고 미리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전략적 구상을 실천에 옮기고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전략을 세워야 한다. 이제 정부가 고민할 때다. 인내와 아량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다. 정부는 한미일 3국 안보공조와 중국 문제, 무력의 ‘비대칭성’(非對稱性)을 커버할 국가 안보전략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한다. 비상한 각오와 행동이 필요하다.

북한에 대한 대응 전략, 이쯤에서 리셋(reset)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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