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 전 한국선거학회 회장.

여야의 운명을 가를 총선이 5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내년 4월 총선은 윤석열 대통령 집권 2년이 끝나는 시점에 실시되기 때문에 ‘중간평가’의 성격이 강하다. 통상 중간평가 선거에서 유권자는 ‘전망적(prospective) 기대’보다는 ‘회고적(retrospective) 평가’를 토대로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전망적 투표’는 각 정당이 미래에 무엇을 실현하겠다는 정책과 약속에 대한 비교를 통해서 지지할 후보를 선택한다. 반면, ‘회고적 투표’는 정부와 집권당이 그동안 일을 잘했는지 못했는지에 따라 만족하는 경우 보상(지지)하고 불만인 경우에는 처벌(응징)한다. 따라서 중간 평가는 여당의 무덤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1988년 제13대 총선부터 2020년 제21대 총선까지 총 8번 총선에서 중간 평가 성격의 총선은 1996년, 2000년, 2016년, 2020년 등 네 차례 있었다. 그중 문재인 대통령 집권 3년 직후에 실시된 2020년 4월 총선에서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으로 여당인 민주당(180석)이 압승한 것을 제외하고 집권당이 모두 패배했다. 1996년 총선에서 신한국당은 제1당은 되었지만 과반 확보에 실패했다. 2000년 총선과 2016년 총선에서 새천년민주당과 새누리당은 제2당으로 전락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내년 총선 전망에 대해 ‘야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견제론’이 ‘여당 후보가 많이 당선돼야 한다’는 ‘정부지원론’보다 높게 나오고 있다. 가령, 한국갤럽 10월 둘째 주 조사(10~12일) 결과, ‘정부견제론’(48%)이 ‘정부지원론’(39%)보다 9%p 앞섰다. 이런 추세는 지난 4월부터 지속되고 있다. 이런 취약한 선거 환경 속에서 집권당이 총력전을 펼친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에 17.1%포인트의 차이로 참패했다. 중도층과 2030세대의 지지를 잃은 탓이다. 보궐선거 결과가 국민의힘에게 큰 충격으로 와 닿는 것은 민심이 2020년 총선 상황으로 돌아갔음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지난 총선에서 강서구 갑·을·병 3개 선거구에서 민주당 후보가 모두 승리했고, 세 후보 합산 득표율은 57.3%였다.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후보들과의 득표율 차이는 18.1%포인트였다. 놀랍게도 이번 보선 결과와 흡사했다. 이대로 내년 총선을 치른다면 수도권 선거(121석)에서 ‘민주당 103석, 미래통합당 16석’의 ‘민주당 압승’ 상황이 되풀이될지도 모른다.

국민의힘은 강서구청장 참패 이후 당 쇄신을 위해 임명직 당직자를 교체하고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켰다. ‘푸른 눈의 한국인’으로 유명한 전남 순천 출신인 연세대 의대 인요한 교수를 위원장으로 위촉했다. 혁신위는 혁신 제1호 안건으로 ‘당내 화합을 위한 대사면’을 내세웠다. 윤리위 징계로 당원권 정지 상태인 이준석 전 대표와 홍준표 대구시장, 김재원 최고위원 등에 대한 징계 해제를 당 지도부에 건의했고, 당 지도부는 이를 의결했다. 혁신 제2호 안건으로 “당 지도부 및 중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거나 아니면 수도권 지역에 어려운 곳에 와서 출마하는 걸로 결단을 내려줄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인 위원장은 “우리 당은 위기다. 바로잡기 위해선 희생의 틀 아래에서 결단이 요구된다”며 “과거엔 국민이 희생하고, 정치하는 분들은 많은 이득을 갖게 됐는데 이제 국민에게 모든 것을 돌려주고 정치인이 결단을 내려 희생하는 새로운 길을 요구한다”고 했다.

물론 이런 요구는 한계가 있다. 혁신위가 공식 의결한 ‘혁신안’이 아닌 인 위원장 차원의 ‘정치적 권고’였기 때문이다. 이밖에 혁신위는 국회의원 숫자 10% 감축, 불체포 특권 전면 포기 당헌·당규 명문화, 국회의원 세비 삭감 및 국회의원 구속 시 세비 전면 박탈 및 본회의·상임위원회 불출석 시 세비 삭감, 현역의원 평가 후 하위 20% 공천 원천 배제 등을 혁신안으로 발표했다.

한국정당에서 혁신위 체제는 낯설지 않다.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때 홍준표 혁신위,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시절 김문수 혁신위,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때 류석춘 혁신위, 이준석 대표 때 최재형 혁신위가 활동했다. 민주당의 경우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 시절 김상곤 혁신위, 이재명 대표 때 김은경 혁신위가 등장했다. 그중 홍준표 혁신위만 성공 사례로 꼽히고 나머지는 실효성 있는 쇄신안을 남기지 못하고 용두사미로 끝났다. 2005년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 시절 비주류였던 홍준표 혁신위원장은 대선 1년 6개월 전 당권·대권 분리, 공직선거 후보 공천 시 일반 국민 의사 50% 반영 등 굵직한 쇄신안을 완성했다.

정치권에서 명멸한 혁신위 전례를 되짚어 보면 ‘혁신위에게 전권 위임, 국민 눈높이에 맞는 혁신안, 지도부의 대승적 수용, 대통령의 혁신안 용인’ 등이 성패를 가르는 요인이었다. 인요한 혁신 2호안은 ‘이중적 딜레마’를 가져올 수 있다. 만약 혁신안이 부결되면 결국 국민의힘은 혁신을 거부하는 정당으로 낙인이 찍히고, 의결되면 영남 중진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내 갈등이 고조되어 분열을 양산할 수 있다. 통합을 제일 가치로 내세운 인요한 혁신위가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는 역설적인 상황이 초래될 수 있다. 여하튼 혁신위 요구가 실제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더 두고 봐야 한다. 김기현 대표는 “논의 결과를 종합해서 제안해 오면 당의 정식적인 논의 기구와 절차를 통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최근 정책 이슈로 ‘경기 김포시 서울 편입’을 꺼내 파장을 일으킨 데 이어 국회 쇄신 이슈까지 선점하면서 오히려 야당을 앞서 나가고 있다. 여론도 정부·여당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흐르면서 대통령과 국민의힘 지지도가 동반 상승했다. 리얼미터·에너지경제신문 11월 1주 조사(10월 30일-11월3일)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직전 조사(10월23∼27일)보다 1.1%포인트 오른 36.8%로 집계됐다. 윤 대통령에 대한 긍정 평가는 최근 2주 연속 상승세(32.5%→35.7%→36.8%)를 나타내고 있다. 정당 지지도 조사(11월 2~3일)에서도 국민의힘 지지세도 소폭이지만 상승했다. 직전 조사와 비교해 국민의힘은 1.9%p 오른 37.7%, 민주당은 3.2%p 내린 44.8%로 나타났다. 민주당은 9월 1주차(44.2%) 이후 8주 만에 40% 중반 밑으로 내려섰고, 국민의힘은 3주 연속 상승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양당 간 차이는 12.2%P에서 7.1%P로 좁혀졌다.

한국 선거에서는 ‘이슈 선점의 법칙’이 작동한다. 국민들이 체감하는 이슈를 선점할 수 있는 세력이 승리한다는 것이다. 스토크스(Stokes)는 정책 쟁점의 유형으로 ‘합의 쟁점’(valence issue)과 ‘대립 쟁점’(position issue)을 제시했다. 합의 쟁점은 긍정적 또는 부정적인 어느 한 편으로 평가되는 조건으로서 유권자의 거의 모두가 이 쟁점에 있어서 동일한 선호를 갖는다. 따라서 특정 정당 및 후보자의 능력이나 이미지와 밀접히 관련되는 논쟁의 대상이 된다. 지역주의 타파, 정치 개혁 등이 이에 해당한다. 대립 쟁점은 찬성과 반대가 뚜렷한 입장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이다. 충청 수도권 이전, 무상 급식, 전 국민 재난 지원금 지급 등의 이슈가 전형적인 대립쟁점이다. 자신에게 유리한 이슈를 대립쟁점으로 선점하는 세력이 선거에서 우위를 차지한다.

한편, 카민즈와 스팀슨(Carmines and Stimson) 교수는 정책 쟁점의 유형을 ‘쉬운 쟁점’과 ‘어려운 쟁점’으로 구분했다. 쉬운 쟁점은 기술적이기보다는 상징성이 강하며, 정책 수단보다는 정책 목표에 관련되고, 장기간에 걸쳐 현안이 된다. 예를 들면, 미국 선거에서는 인종문제, 한국선거에서는 대북 지원 등이 쉬운 쟁점의 전형적인 예다. 쉬운 쟁점이 현실적인 이슈로 부각되면 정치적인 관심과 지식수준이 낮은 사람들도 이에 근거하여 지지 정당을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에 어려운 쟁점에 대한 견해의 정립과 인지는 상당한 수준의 관심과 지식이 필요하다. 가령, 국가 예산 편성을 둘러싼 ‘건전 재정 대 확장 재정’간의 문제는 어려운 쟁점의 예다. 김기현 대표는 지난달 30일 ‘김포시의 서울시 편입’을 당론으로 추진한다고 밝혔다. 야당은 ‘행정 체제 대개혁’으로 맞불을 놓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메가시티 서울’ 추진에 본격 시동이 걸리자 김포가 아닌 다른 인접 도시도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소속 시장들이 있는 구리, 하남, 과천, 의정부, 고양 등 지자체들도 서울 편입을 검토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메가시티 서울’ 정책은 지난 2011년 구성된 영국 광역맨체스터연합의 사례처럼 사회적 논의 과정이 길게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선점한 이 이슈는 내년 총선에서 ‘쉬운 대립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충청 행정 수도 이전’ 이슈를 제시해 재미를 본 것과 비슷한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국민의힘은 김포를 서울시로 편입하는 ‘메가시티 서울’ 정책에 이어 공매도 한시적 금지까지 굵직한 정책으로 이슈몰이에 나서고 있다. 공매도 한시 중단은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지 않고 시장 원칙도 훼손할 수 있다는 비판이 있어 보수 정당에서는 쉽게 꺼내기 어려운 정책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하지만 여당의 강력한 요구에 따라 시행이 결정됐다고 한다. 국민의힘은 개미 투자자 보호와 ‘공정한’ 시장 조성이라는 명분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이번 정책을 밀어붙였다. 국민의힘이 이슈 선점에 성공했다고 본다.

한편, 여당이 이준석 전 대표와의 갈등으로 난관에 봉착하고, ‘이준석 신당’이 구체화하면서 야권 일각에선 벌써 ‘총선 낙승’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정동영 민주당 상임고문은 “수도권을 석권하면 200석 못 하리라는 법도 없다”고 전망했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도 “다양한 범민주 진보세력, 그리고 국민의힘 이탈 보수 세력까지 다 합해 200석이 되길 희망한다”고 적었다. 단언컨대, ‘민주당 200석 압승론’은 민주당에게 재앙이 될 것이다.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200석 가능론’에 대해 “국민들로부터 오히려 매 맞을 소리”라며 “이제 겨우 지역 예선전 치렀는데 우리가 월드컵 우승할 거라고 주장하면 좀 그렇다. 자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의미 있는 결과를 도출하려면 이런 허황한 전망보다는 국민들이 공감하고 지지를 받을 수 있는 이슈를 제기해 여당과 치열한 정책 경쟁을 펼쳐야 할 것이다.

<외부 필자의 기고와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침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