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돈 제20대 국회의원

이상돈 제20대 국회의원
이상돈 제20대 국회의원

우리 헌법 제44조는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그리고 제84조는 대통령의 형사소추 면책권을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제헌헌법 제49조와 제67조로 우리 헌법에 들어온 후 3공 헌법, 유신헌법, 5공 헌법, 87년 헌법에 이르기까지 변함이 없다.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개헌을 할 기회가 있으면 두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미국 헌법에 규정돼 있는 의원의 불체포 특권은 민사 체포를 금지한다는 의미이고 200년 전에 이미 사문화한 조항임은 이미 설명한 바 있다. 그러면 도무지 어떻게 해서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이 제헌헌법 제49조로 우리 헌법 체계에 들어오게 됐을까? 제헌헌법을 기초한 사람은 헌법학자 유진오(兪鎭午)이지만 그에 앞서 조소앙(趙素昻), 신익희(申翼熙) 등이 헌법을 성찰하고 우리 헌법의 골격을 구상했다. 이때 이들은 쑨원(孫文) 헌법, 또는 5권 분립을 구현해서 ‘5권 헌법’이라고 불리는 자유중국 헌법을 참고했다. 공식적으로 1946년에 발효했으나 중국 본토를 공산당에 상실해서 결국은 오늘날 대만(자유중국) 헌법으로 발전해 온 바로 그 헌법이다.

자유중국 헌법 제33조는 중대한 범죄를 제외하고 국회의원은 회기 중에 체포당하거나 구금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우리 헌법에 비해서 중대한 범죄의 경우에는 불체포 특권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의원은 경미한 범죄로 인해서 체포/구금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이는 무의미한 이야기이다. 왜냐하면 경미한 범죄라면 현행범이 아닌 한 체포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만 국회의원은 불체포 특권을 사실상 갖고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일본 헌법 제50조는 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인정하되 법률로 그것을 배제하는 경우를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멕시코 헌법은 국회의원의 발언 면책은 인정하지만 불체포 특권은 인정하지 않으며, 칠레 헌법 61조는 중대한 범죄가 아닌 경우에 의원은 회기 중 체포/구금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우리야말로 국회의원의 불체포 특권을 매우 포괄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다. 성한용 기자는 불체포 특권은 헌법 제도이기 때문에 포기하면 위헌이라고 주장하나, 이 역시 우스운 이야기이다. 불체포 특권은 특권이고 특권은 당연히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당사자가 포기하겠다는데 국회 본회의가 본인의 의견을 무시하고 체포 동의안을 부결시킨다는 것은 자체가 우스운 이야기이다. 시대착오적인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은 제헌헌법 때 규정한 것이기 때문에 이승만 독재나 박정희 독재에 항거하기 위해 도입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런 압제적 정권하에서 의원들을 보호하는 방패 역할을 했던 것은 사실이다. 87년 개헌 때는 이것을 삭제하자는 논의도 있었으나 혹시 모르니까 그대로 두자고 해서 존치된 것이다.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은 우리 헌법 조항 중 삭제해야 하는 조항으로 손꼽혀 왔다.

또 하나 우리 헌법 중 삭제해야 마땅한 조항은 대통령은 내란외환죄가 아닌 한 재직 중 형사소추 당하지 않는다고 규정하는 헌법 제84조 조항이다. 이 역시 제헌헌법 제67조로 우리 헌법 체계에 들어와서 오늘날까지 그대로 있다. 현직 대통령이 내란 외환죄를 범하면 탄핵으로 해임하지 않고도 기소할 수 있으나 다른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탄핵을 거친 후에야 기소할 수 있다는 이야기인데, 도무지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경우를 상정한 조항이다. 이 조항도 자유중국(대만) 헌법에서 유래한 것으로, 우리 헌법 제84조는 현행 대만 헌법 제52조와 똑같다.

1948년에 제헌헌법이 채택될 당시 대통령제는 미국과 중남미에만 있었다. 당시 유럽은 모두 의원내각제였다. 미국 헌법은 물론이고 멕시코 헌법과 칠레 헌법에도 대통령의 형사소추 면책 조항은 없다. 그러니까 우리 헌법에 들어 온 이 조항의 뿌리도 자유중국 총통제 헌법이다. 이 조항은 법 앞의 평등이라는 관점에서 잘못된 것이기에 개헌을 할 기회가 있으면 삭제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을 검사가 과연 기소할 수 있는가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미국에선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에 이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1973년 가을부터 하원이 탄핵 절차를 개시하고 특별검사는 닉슨 대통령의 혐의를 파헤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했다. 당시 특별검사이던 리언 자워스키(Leon Jaworski) 변호사는 현직 대통령을 기소할 수 있나를 두고 헌법학자들의 자문을 구하는 등 고민 끝에 현직 대통령은 기소할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즉, 현직 대통령을 상대로 한 수사는 가능하지만, 기소는 불가능하다고 결론 내린 것이다. 그래서 특별검사는 워터게이트 사건 당시의 백악관 비서실장과 참모 여럿을 대배심을 통해 기소하면서도 닉슨 대통령은 ‘기소되지 않은 공모자’(Un-indicted Co-Conspirator)로 지정하는 데 그쳤다.

닉슨이 사임함에 따라 특별검사는 닉슨을 기소하지 않을 수 없게 됐으나 제럴드 포드 대통령이 닉슨을 사면함에 따라 닉슨은 형사 소추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리언 자워스키 특별검사는 “워터게이트 사건은 어느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음을 보여 주었다”는 말을 남겼으나 포드 대통령에게 닉슨을 사면하도록 은밀히 촉구했다고 전해진다. 그런 재판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닉슨을 사면하자 포드 대통령의 지지도는 폭락했으나 포드의 이 조치는 용기 있는 선택으로 평가된다. <참고: ‘이상돈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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