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마라톤 출전한 손기정과 선수들
길기만 한 전반부…후반부 마법에 가슴 찡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영화 ‘1947 보스톤’ 스틸컷.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리뷰》

오는 27일 개봉하는 ‘1947 보스톤’은 제목부터가 진실한 영화다.

우선 1947년 미국 보스턴에서 열린 마라톤대회가 정말 이 영화의 배경이라서다. 주인공은 미군정 남조선과도정부서 고 손기정 옹이 이끈 마라톤팀이고, 이들이 보스턴마라톤에 참가한 사실이 108분 영화로 재구성됐다. 하지만 아무리 실화가 토대라도 70여년 전 일. 그런데도 이 영화가 지금에 통용될 수 있는 이유는 주제가 ‘낭만’이란 것이 크다.

월계수 화분이 가슴의 일장기를 가렸단 이유로 더는 육상을 안 하겠단 각서를 써야 했던 베를린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그의 세계 제패 10주년을 기념하는 대회가 1946년 서울 태평로에서 열린다. 이북에서 가족을 못 데려온 것에 낙담하던 기정은 앞으로 한국이 올림픽에 참가하려면 국제대회 기록이 필요하단 이유로 얼떨결에 보스턴마라톤 감독직을 맡게 된다.

그런 기정과, 과거 올림픽서 같이 뛴 코치 남승룡의 눈에 10주년대회 우승자 서윤복이 띄고, 재정 보증금 등 갖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보스턴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쉬리’로 충무로도 블록버스터가 가능하단 것을 알린 강제규 감독의 신작인 이 영화는 그간 그가 쌓아 올린 명성과는 사뭇 다른 작품일 수 있겠다. 이 영화엔 귀신(‘은행나무 침대’)도 없고, 첩보원(‘쉬리’)도 등장하지 않으며, 탱크(‘태극기 휘날리며’) 역시 보이지 않는다. 1940년대가 배경인 시대극이기도 하다. 관객으로선 ‘민족의 영웅’ 손기정이 등장한단 것과 마라토너 역 배우가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근육질 깡마른 몸 외엔 만족할 구석이 없는 것이다.

더더군다나 세 남자가 보스턴에 가기까지를 다룬 영화의 절반은 안 봐도 본 듯 내용도 뻔하고 신Scene과 신 간의 얼개도 유기적이지 않아 지루한 구석이 많다.

여기까진 필름시대에 전성기를 누린 강 감독의 한계인가 싶기도 하다.

그러나 “올드보이”는 죽지 않는다. 가슴에 무슨 국기를 달고 뛸 것인지 서로 치고받고 싸울 때만 해도 빛바랜 사진 같기만 한 이 영화는, 마라톤 출발 총소리를 기점으로 전에 없던 추진력을 얻는다. 윤복이 경기 중 닥친 위기를 그가 생애에 걸쳐 겪은 고난으로 극복하는 순간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 블록버스터는 외피일 뿐 늘 후반엔 감정을 어루만지던 강 감독의 진가가 이동준 음악감독의 한 서린 음악에 힘입어 이번에도 뻑적지근히 가슴에 통증을 남긴다.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뛴 나라 잃은 마라토너 손기정으로 시작, 종국엔 한 청년의 성공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그래서 지금 우리 시대엔 없는 낭만을 다루는 영화다. 잿밥이나 빌어먹고 살 정도로 지독히 불우했지만 그럼에도 묵묵히 버틴 서윤복 선수의 영광榮光이 문자 그대로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빛난다. 올드보이의 한 방이란 이런 것 아니겠는가.

손기정 역은 배우 하정우가, 손기정에게 사사한 신예 마라토너 서윤복 역은 임시완이 맡았다. 하정우와 임시완의 투숏을 보자면 장강후랑추전랑長江後浪推前浪이란 옛말이 떠오른다. 장강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며 흐른단 뜻이다. 다만 그 앞물이 물러날 시기가 지금은 아닌 듯하다.

파이낸셜투데이 김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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