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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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관련 발언으로 교육계가 들썩이고 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공교육 교육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의 이 말은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 지난 3월부터 ‘공정한 수능’을 정책목표로 할 것을 이미 지시했다는 게 대통령실의 설명입니다.

하지만 6월 모의평가에서 대통령의 지시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는 ‘정황’이 포착돼 윤 대통령이 ‘발끈’하면서 사태가 이상하게 꼬여갔습니다. 윤 대통령 지시로 교육부 대입담당국장이 경질됐고 이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사태의 근본원인을 학원과 출제관계자들의 ‘이권 카르텔’이라고 규정하면서 상황이 더욱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윤 대통령의 대학입시 정책 총론 자체에는 큰 문제가 없습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 대선 때 ‘킬러 문항 출제 배제’를 공약으로 내걸었기 때문에 입시정책 가운데 핵심인 수능의 출제 난이도를 손 볼 때가 됐다는 공감대가 정치권에도 어느 정도 형성됐습니다. 하지만 수능을 불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대통령이 갑자기 난이도에 대해 태클을 걸면서 사달이 났습니다.

학부모와 수험생들은 도대체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는지 혼란스러워 하는 모습입니다. 오로지 대학입시에 목을 매며 달려온 학생들에게 수능 출제 난이도의 ‘급격한’ 변화는 그 자체로 심리적인 공포입니다. 교육부가 ‘난이도에 급격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며 수습을 하고 하지만 예측가능성과 신뢰가 생명인 대학입시 정책이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뒤집힌다는 프레임이 잡히면서 여권도 적극적인 사태 진화에 나섰습니다.

문제는 여권 관계자들의 대응 방식입니다. 대통령이 ‘갑자기’ 수능 난이도에 문제를 제기하고 그것이 일선의 혼란으로 이어지면서 ‘윤석열 대통령 책임론’이 급격하게 퍼졌습니다. 이에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은 일제히 ‘윤석열 지키기’에 나섰습니다. 그들의 ‘쉴드 워딩’은 눈물겹기까지 합니다.

19일 국회에서 학교교육 관련 당정협의회를 하고 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와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 등이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19일 국회에서 학교교육 관련 당정협의회를 하고 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와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 등이 참석했다. 사진=연합뉴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19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실무 당정협의회에서 “일각에서 윤 대통령이 입시에 대해 뭘 아느냐는 식으로 폄하하는데, (이는) 헛다리를 짚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박 의장은 “대통령은 검찰 초년생인 시보 때부터 수십 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면서 입시 비리 사건을 수도 없이 다뤄봤고, 특히 조국(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대입 부정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등 대입 제도의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라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이) 대학제도의 사회악적인 부분, 입시제도 전반을 정확히 꿰뚫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역시 같은 날 기자들에게 “저도 전문가지만 특히 입시에 대해서는 (윤 대통령이) 수사를 하면서 깊이 고민하고 연구도 하면서, 저도 진짜 많이 배우는 상황”이라며 윤 대통령의 높은 교육정책 ‘능력’을 언급했습니다.

이쯤 되면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교육 전문가 신화’가 만들어질 정도입니다.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윤 대통령을 교육 전문가로 포지셔닝 하면서 그 근거로 검사 시절 수사 경험을 예로 들었습니다. 입시비리 수사경험을 한 검사의 ‘단편적인 시각’과 평생을 교육정책에 바친 전문가들의 복잡다단한 인식을 동일시하는 접근 자체가 폭력적이고 일방적입니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윤 대통령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최고책임자로서 찔렸는지 대통령 앞에 바짝 엎드리며 “저도 진짜 많이 배우는 상황”이라고 말했습니다. 교육부 장관을 2번이나 역임한 당대의 교육정책 최고 전문가가 대통령에게 ‘한 수 배우는’ 정도의 정책능력이라면 당장 사표를 써야 합니다.

교육부 담당국장이 대번에 잘리는 상황을 보고 기겁을 했는지 ‘대통령 찬양’부터 하는 이주호 장관의 대응은 참으로 비겁하고 무능합니다. 하늘을 찌르는 아부로 장관직을 지킬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교육부 최고책임자로서 사표를 내야 상식적인 처신입니다.

또한 윤 대통령은 수능과 관련해 ‘학원’과 ‘출제 관련자’들의 카르텔까지 거론하며 ‘교육 개혁’을 주장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 15일 이주호 교육부 장관에게 사교육비 경감 대책을 주문하면서 “과도한 배경지식을 요구하거나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등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출제하면 이런 것은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 교육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 편(카르텔)이란 말인가”라고 말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그동안 부패한 기득권 세력의 ‘적폐’를 카르텔로 규정하며 강도 높은 비판을 했습니다.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교육부 대입 담당 국장을 경질하면서 “이권 카르텔의 증거”라고 못 박으며 대통령의 강력한 카르텔 척결 의지를 강조했습니다.

2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 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학원에 가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혀야만 하는 소위 '킬러문항'은 수능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21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학원 앞에 수업 내용과 관련된 광고문구가 적혀 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이날 "학원에 가서 문제풀이 기술을 익혀야만 하는 소위 '킬러문항'은 수능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

대통령실은 이번에 윤 대통령이 지적한 ‘공정한 수능문제 출제’와 ‘교육계 카르텔 척결’ 지시는 대통령이 오랫동안 고민하고 연구해온 교육정책의 핵심을 ‘새삼’ 강조한 것뿐이라고 항변합니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의 핵심 관계자는 한 언론에 “윤 대통령은 입시 비리 등 수사를 많이 해봤고 본인이 사법고시 9수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시험 전반에 관심이 지대하다. 매년 수능 문제를 풀어보는 등 교육 문제에 평소에도 각별한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런 대통령실의 주장은 ‘억지 논리’로 듣기에도 거북합니다. 사법시험 9수를 해봤기 때문에 시험 전반에 관심이 지대하고 충분히 수능 난이도에 대해 언급할 ‘자격’이 있다는 주장은 지나친 논리 비약입니다. 그리고 매년 수능 문제를 풀어보는 것이 대통령의 평소 교육 문제 관심의 척도로 여기는 대통령실의 인식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이명박 리더십’을 시전하는 것입니다.

윤석열 정권은 대통령이 정치신인으로 국가 최고지도자 자리에 오르면서 대통령의 권위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매도되는 경향이 있다고 믿는 것 같습니다. 윤 대통령 또한 소탈하고 솔직한 이면에 ‘부하’들에게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하는 권위적인 리더십을 드러내면서 장관이나 참모들도 대통령 눈치 보기에 급급합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통령에 대한 그 어떤 비판도 용납되지 않습니다. 대통령의 모든 언행이 ‘신성시’되면서 윤석열 정권의 정책소통은 꽉 막혀버렸습니다. 정책추진과정에서 나오는 비판을 대통령이 긍정적으로 수용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정책의 완결성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 수능 난이도 조절까지 언급하며 만기친람 하니 장관이나 여당은 소신 있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윤비어천가’밖에 부를 줄 모릅니다. 대통령 말 한 마디에 국가 백년대계인 교육정책이 왔다 갔다 한다면 그런 정부를 누가 신뢰하겠습니까.

대통령이 해야 할 최고의 교육정책은 참모를 신뢰하고 그들이 소신 있게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대통령이 9수를 했다고 수능 출제에까지 개입할 자격이 된다는 주장은 ‘나뭇잎으로 배를 만든’ 누구의 신화에 비견되는 불행한 발상입니다.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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