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 배출 않는 꿈의 기술 ‘수소환원제철’
2030년 상용화 목표로 그룹 역량 총동원
EU·日 선점 경쟁 치열한데...정부 지원은 미미

포항제철소 3FINEX(파이넥스) 공장 전경. 포스코는 파이넥스의 유동환원로 기술을 바탕으로 수소환원제철 공법 HyREX(하이렉스)를 개발하고 있다. 사진=포스코홀딩스
포항제철소 3FINEX(파이넥스) 공장 전경. 포스코는 파이넥스의 유동환원로 기술을 바탕으로 수소환원제철 공법 HyREX(하이렉스)를 개발하고 있다. 사진=포스코홀딩스

“철의 역사가 3000년이 됐습니다. 이젠 이산화탄소를 줄이고자 철을 만드는데 수소를 활용하려 합니다. 성공만 한다면 ‘신철기시대’를 우리 포스코와 포항제철소가 이끌 수 있을 겁니다. (천시열 포스코 포항제철소장)”

‘2050 탄소중립’을 향하고 있는 포스코가 탈탄소를 위한 꿈의 기술 ‘수소환원제철’ 개발에 전념하고 있다. 수소환원제철이란, 철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석탄이나 천연가스 같은 화석연료 대신 수소(H2)를 사용해 탄소 배출을 혁신적으로 줄이는 기술이다.

순수한 철을 얻기 위해선 철광석에서 산소를 떼어내는 환원 과정이 필수적이다. 전통적인 제철 공정에선 환원반응을 일으키기 위해 석탄 등 화석연료를 활용하며, 그렇게 만들어진 고체 철을 녹이고 쇳물을 만드는 용융반응까지 고로 내에서 동시에 이뤄진다.

반면 수소환원제철 공정에선 환원반응과 용융반응이 고로가 아닌 환원로와 전기로라는 두 가지 설비에서 각각 분리돼 일어난다. 환원로에서 화석연료 대신 고온의 수소를 활용해 고체 철을 제조하고, 이를 통해 제조한 직접환원철(DRI)을 전기로에 넣어 쇳물을 생산하는 것이다.

포스코는 2007년 상용화한 자체 기술 ‘파이넥스(FINEX)’ 유동환원로를 통해 석탄 대신 약 25%의 수소를 활용하며 탄소 배출을 절감해냈다. 24일 방문한 포항제철소 파이넥스 3공장에선 여전히 유동환원로를 거쳐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용선이 세차게 나오고 있었다. 현재까지 파이넥스 유동환원로를 통해 포스코가 뽑아낸 쇳물만 3400만톤에 달한다.

포스코는 이 파이넥스 기술을 기반으로 수소만 100% 사용하는 ‘하이렉스(HyREX)’ 기술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아직 전 세계적으로 100% 수소만을 사용해 DRI를 생산하는 환원로는 상용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를 놓고 글로벌 철강사들의 기술 선점 경쟁이 치열하게 펼쳐지고 있다.

포스코가 개발중인 전기용융로(ESF) 시험설비 전경. 전기용융로(ESF)는 전기아크로(EAF)의 단점을 보완하여 저품위 직접환원철(DRI)로부터 고급 철강 제품의 쇳물(용선) 생산이 가능하다.. 사진=포스코홀딩스
포스코가 개발중인 전기용융로(ESF) 시험설비 전경. 전기용융로(ESF)는 전기아크로(EAF)의 단점을 보완하여 저품위 직접환원철(DRI)로부터 고급 철강 제품의 쇳물(용선) 생산이 가능하다. 사진=포스코홀딩스

하이렉스 공정에서 쇳물을 생산하는 전기로는 유동환원로만큼이나 핵심적인 설비다. 하이렉스 공정에선 총 4개의 유동환원로에서 철광석을 순차적으로 수소와 반응시켜 DRI를 생산한 후, 전기용융로(Electric Smelting Furnace, ESF)에서 용융한 용선으로 탄소 감축 제품을 만든다.

오늘날 많은 글로벌 철강사들은 탄소 배출을 절감하기 위해 고로 대신 전기로를 도입하고 있으나, 기존 전기아크로(Electric Arc Furnace, EAF)의 경우 자동차용 강판 등 고급강을 생산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에 철강업계에서는 다양한 품위의 원료를 다룰 수 있는 ESF가 새로운 대안 중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는 올해 1월 시간당 최대 1톤의 용선을 생산할 수 있는 전기용융로 시험설비(Pilot ESF)를 완공했다. 1톤이라는 단위가 작다고 느껴질 수도 있으나, 시험설비로는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다. 이 설비가 대외적으로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올해 4월 첫 출선에 성공한 포항제철소 ESF 시험설비는 지금까지 총 15톤의 용선을 출선했다. 오는 7월에 또 한번의 테스트 조업을 진행할 예정이며, 내년까지 기술 개발을 마친 후 수소환원제철 데모 플랜트가 건설되면 이에 맞춰 상용화할 계획이다. 박재훈 포스코기술연구원 그룹장은 “현재 후공정에서 요구하는 품질을 맞추고 있으며, 요구되는 수준의 90%까지는 왔다고 보시면 된다”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포스코가 발빠르게 ESF를 개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그룹 계열사 에스엔엔씨(SNNC)의 역할이 컸다. SNNC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큰 합금철 ESF를 운영하며 확보한 노하우를 백분 활용한 것. 박 그룹장은 “수소 유동환원로는 파이넥스, 전기로는 SNNC의 대형 ESF 운영 경험이 있었기에 포스코가 과감하게 하이렉스 기술 개발에 도전할 수 있었다”라고 힘줘 말했다.

천시열 포스코 포항제철소장이 24일 포항제철소에서 철강 사업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채승혁 기자
천시열 포스코 포항제철소장이 24일 포항제철소에서 철강 사업 전략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채승혁 기자

포스코가 자체 파이넥스 기술 역량을 기반으로 하이렉스를 개발하고 있다면, 유럽·미국 등 해외 철강사들은 천연가스를 일산화탄소와 수소가스로 개질해 사용하는 샤프트환원로(Shaft Furnace) 기반 수소환원제철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EU·일본 등 주요국들은 자국 철강산업의 성공적 탈탄소 전환을 위한 다양한 정책 지원을 펼치고 있다. EU는 10년간 1조유로를 그린딜 정책 실행에 투입하기로 했으며, 개별 회원국에서는 철강사의 탈탄소 전환 설비 투자비용의 40~60%에 달하는 직접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산업 전반의 탈탄소 전환을 위한 GX 정책을 수립, 철강분야에만 3조엔 이상 투입할 예정이다.

우리 정부도 수소환원제철 기술 개발에 힘을 보태기 시작했으나, 조단위의 재원을 지원하고 있는 EU·일본 등과 비교하면 그 규모가 못 미친다는 평가다. 각국 철강사들 간의 경쟁이 펼쳐진 현시점에서 기술 선점을 위해 보다 적극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포스코는 수소환원제철 핵심 전기로 기술 개발을 가속화해 2027년까지 연산 30만톤 규모의 하이렉스 시험설비를 준공하고, 2년 정도의 기술 검증을 거친 후 오는 2030년에는 하이렉스 상용화 기술을 완성한다는 청사진이다. 이를 위해 포스코는 연초 포항제철소에 수소환원제철 개발센터를 개소하며 본격적인 시험 설비 구축에 착수했다. 

배진찬 포스코 하이렉스 추진반장은 “막대한 자본과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일이지만, 탄소중립 시대에 철강산업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반드시 기술을 선점하고 먼저 개발해야만 한다”라고 강조하며 “1973년 처음 쇳물을 만들어 ‘경제국보 1호’가 된 포항제철소 1고로에 이어, ‘신경제국보 1호’가 될 하이렉스 기술 개발에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말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채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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