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환 슈퍼빌런랩스 공동대표 인터뷰
토큰 아닌 블록체인 기술력 자체에 주목
“커뮤니티 없는 P2E 게임은 롱텀 폰지”

고정환 슈퍼빌런랩스 공동대표가 서울 서초구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채승혁 기자
고정환 슈퍼빌런랩스 공동대표가 서울 서초구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채승혁 기자

“커뮤니티 없이 토큰부터 발행하고 그걸로 개발비를 충당하면 안 됩니다. 결국 비즈니스가 성립하려면 돈을 지불해야 할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퀄리티 낮은 게임에 인센티브 가져가려는 사람들만 모인다면 그건 롱텀 폰지밖에 안돼요. 이 시장에 대한 고객 정의부터 잘못된 겁니다.”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난 고정환 슈퍼빌런랩스 공동대표는 “블록체인 게임들이 첫 단추를 잘못 뀄다”라면서 이같이 목소리를 높였다. 토크노믹스에 매몰돼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초점이 토큰 발행에만 맞춰지다 보니, 게임이 ‘즐거움’이라는 본질적인 존재 의의에서 벗어나 투기 수단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숱한 웹3 게임들이 출시 후 짧은 시간 내 서비스를 종료했다. 몇몇 게임들이 발행한 코인 가격은 마치 뱅크런 사태를 연상할 정도로 크게 요동쳤다. 내 캐릭터에 애정을 갖고 게임을 즐기며 개발자들과 소통하는 게이머는 보기 드물었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까가 가장 중요한 화두였고, 시장은 붕괴될 수밖에 없었다.

슈퍼빌런랩스는 게이머들과 개발자들을 연결해 주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게 토크노믹스보다 중요하다고 봤다. 돈을 버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P2E 게임은 지속성을 증명하지 못한 일종의 ‘롱텀 폰지’에 불과했으며, 신뢰를 바탕으로 커뮤니티를 확장하는 웹3 게임만이 성공할 것이라는 게 이들의 지론이다.

방치형 RPG 게임 ‘Supervillain Idle RPG’와 PC 기반 MMORPG ‘Project Ark’의 트레일러 캡처.
방치형 RPG 게임 ‘Supervillain Idle RPG’와 PC 기반 MMORPG ‘Project Ark’의 트레일러 캡처.

고 대표는 “온라인 게임은 흥행 산업이 아닌 팬덤 사업에 가깝다. 게임성만큼 팬덤 커뮤니티와 신뢰를 쌓고 서비스 저변을 넓혀가는 것도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게임사에게 귀속되지 않고 이용자에게 데이터 주권이 주어지는 웹3의 특징, 그리고 블록체인의 투명성은 팬 커뮤니티를 구축하는데 분명 기술적 강점이 있었다. 슈퍼빌런랩스는 블록체인을 토큰 보다는 하나의 백엔드 기술로 바라봤다.

“웹3 게임이 본격적으로 론칭할 때는 토큰과 에어드롭(토큰을 무상으로 나눠주는 행위)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한꺼번에 들어온다. 근데 저희는 에어드롭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니 사람들이 다 나가시더라. 지금은 정말 저희 게임을 기대하고 계신 분들만 남아있다.” 고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블록체인 업계에선 통상적인 토큰 라운드를 진행하지 않고, 주식 지분을 팔아 투자를 유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슈퍼빌런랩스의 잠재력을 눈여겨본 네오위즈 인텔라 X와 앱토스 랩스 등은 최근 총 450만 달러 규모의 지분 투자를 단행했다. 여기엔 컴투스 그룹의 크릿벤처스도 참가했다.

고 대표는 “예전엔 다른 회사들이 웹2나 그렇게 하지, 웹3 게임은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그렇게 하면 비즈니스가 안돼. 이런 시선으로 저희를 무시하곤 했다. 기존의 방식을 벗어나면 다들 기본적으로 불편해하고 부정적이지 않나. 그럴 거면 우리가 슈퍼빌런이나 되자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슈퍼빌런랩스(Supervillain Labs)는 그렇게 탄생했다.

고 대표가 새로운 블록체인 게임 개발사를 설립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적잖은 글로벌 웹3 게이머들과 업계 관계자들이 관심을 보였다. 넥슨과 데브시스터즈를 거쳐 엔픽셀에서 메타본부장을 역임했던 그는 ‘고정환’이라는 이름보다 ‘루카스(Lucas)’라는 영문명으로 해외에서 더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엔픽셀에서도 그는 토큰보다 ‘커뮤니티’를 우선시한 웹3 게임 ‘그랑사가: 언리미티드’ 개발을 진두지휘했었다. 두 차례의 테스트를 거쳐 제법 활기찬 커뮤니티가 형성됐지만, 회사의 실적 악화 속 프로젝트는 중단됐다. 이들은 고 대표를 중심으로 슈퍼빌런랩스에서 다시 뭉쳤다. 현재 방치형 RPG 1종의 출시를 앞두고 있으며, PC 기반 MMORPG ‘프로젝트 아크’도 개발 중이다.

랜덤을 결정하는 로직이 개발사 서버가 아닌 온체인에 위치하며 누구나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결과값 또한 개발사 서버가 아닌 온체인에 있다. 오른쪽 아래는 슈퍼빌런랩스가 진행한 테스트 결과, 랜덤 로직이 99%의 신뢰구간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트.
랜덤을 결정하는 로직은 개발사 서버가 아닌 온체인에 위치하며 누구나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결과값 또한 개발사 서버가 아닌 온체인에 있다. 오른쪽 아래는 슈퍼빌런랩스가 진행한 테스트 결과, 랜덤 로직이 99%의 신뢰구간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트.

고 대표는 “전 기본적으로 웹2와 웹3를 명확하게 구분 짓진 않는다. 숫자 하나가 늘어났듯, 웹3는 웹2를 확장하는 개념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그는 웹2에서 발생하는 문제점들을 보완하고 해결해 줄 수 있는 웹3의 기술력이 기존 게임들에도 부분적으로 적용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대표적으로 슈퍼빌런랩스는 랜덤확률 로직을 개발사 서버가 아닌 온체인(On-Chain) 위에서 구현하고 동작시켜, 개발사가 확률을 조작할 수 없도록 하고 누구나 투명하게 랜덤 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최근 국내 게임업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확률형 아이템 이슈와 신뢰성 문제도 웹3 게임의 투명성으로 일부 해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고 대표는 게임에서 나오는 막대한 트랜잭션을 EVM(이더리움 가상 머신) 계열의 메인넷은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했고, 대신 높은 TPS(초당 트랜잭션 수)를 자랑하고 병렬 처리가 가능한 레이어 1 블록체인 앱토스(Aptos)에 주목했다. 고 대표는 “온라인 게임에서 필요한 신뢰 구축은 결국 앱토스, 수이(Sui) 같은 무브(Move) 생태계에서 최초로 탄생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메타픽셀 시절부터 연을 이어온 앱토스는 슈퍼빌런랩스의 가장 든든한 우군이다. 슈퍼빌런랩스 역시 앱토스 블록체인의 기여자(Contributor)로서 생태계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고 대표는 “웹3 게임 기술에 있어서는 우리 팀이 국내외 통틀어 가장 진보해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파이낸셜투데이 채승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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