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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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싼 게 비지떡.’ 비지는 두부를 만들다 남은 찌꺼기를 말한다. 값이 싼 물건치고 품질이 좋은 것이 없다는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만 품질에 대한 기대가 없다면 어떨까? 한번 쓰고 버리자는 생각이라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격일 것이다. 대한민국은 ‘초저가’에 중독됐다. 근원지는 중국기업 알리와 테무다. 한국 유통기업들이 각종 규제에 기를 펴지 못하고 있는 점을 틈타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엎고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2일 애플리케이션(앱) 분석 서비스 와이즈앱·리테일·굿즈에 따르면 3월 기준 알리와 테무의 MAU(월간활성화이용자수는 각각 887만명, 829만명에 달했다. 지마켓과 11번가 등을 제치고 쿠팡에 이어 2~3위에 올랐다.

통계청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온라인 해외 직접 구매액은 1조6476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4% 늘었다. 역대 1분기 가운데 최대 규모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9384억원, 미국이 3753억원, 유럽연합(EU)이 1421억원이었다.

중국이 전체 직구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1분기 40.5%에서 올해 1분기 57%로 16.5%P(포인트) 늘었다. 관련 통계를 집계한 이래 가장 큰 비중이다.

알리와 테무의 성장비결은 ‘초저가’다. 테무의 캐치프레이즈가 ‘억만장자처럼 쇼핑하기(Shop like a Billionaire)’일 정도다.

중국업체가 초저가 공세를 펼칠 수 있는 가장 큰 배경은 저렴한 인건비와 생산 인프라에 더해진 플랫폼이다. 안 그래도 저렴한 제품을 직접 판매할 수 있는 판로가 생긴 것이다.

관세·부가세 및 KC(Korea Certification·국가통합인증) 인증 면제도 요인이다. 국내 기업나 도매상이 정식 수입 절차를 거칠 경우 관세와 부가세, KC 인증 비용을 내야하지만 개인 사용 목적으로 직구하는 150달러 이하 상품은 세금이 면제된다.

그러는 동안 국내 기업들의 피해는 누적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은 물건을 판매할 때 품질을 보증하는 KC 인증이 필수적이다. 특히 어린이 제품 판매의 경우 KC 인증을 받지 않으면 법적으로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만원 이하 벌금이나 과태료를 지불해야 한다. 수입 제품의 경우 관세·부가세 등 부수적 추가 비용이 더 발생한다. C커머스와의 경쟁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소비자 피해 역시 증가하고 있다. 최근 알리·테무에서 판매 중인 장신구에서 국내 안전 기준치 이상의 인체발암 가능 물질인 중급속(납·카드뮴)이 검출됐으며, 어린이 제품 30여종에서도 카드뮴 등 1급 발암물질이 검출됐다. 지난달 25일에는 소비자주권시민회의가 알리와 테무를 개인정보보호법위반과 정보통신망법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일도 있었다. 한국 이용자에게 개인정보 제공을 강제로 동의 받고 상품 구매와 관계없는 사생활 정보를 수집해 중국 등 제3국으로 이전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C커머스 공세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2017년 2581억원이던 중국 직구액은 2021년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했는데, 알리와 테무의 공세에 힘입어 2022년 1조4858억원으로 증가한 뒤 지난해에는 3조2873억원으로 1년 사이 2배 이상 늘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가 올해 초에야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나섰지만 여전히 실태조사에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

정부는 지난달 비상경제장관회의에서 ‘해외 온라인 플랫폼 관련 소비자 보호대책’을 발표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C커머스 국내 영향을 심층 분석하기 위한 e커머스 실태조사 설계를 다음달 말까지 진행한다. 지난달에는 알리익스프레스에 대한 현장조사를 실시했고, 테무를 상대로 서면조사에 착수했다.

국무조정실은 산업통산자원부, 중소벤처기업부, 공정위, 관세청 등 관계부처와 함께 ‘해외직구 종합대책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범정부 차원 대응에 나섰다.

문제는 실효성이다. 현행법 상 C커머스를 규제할 방법이 딱히 없다. 관련 법 변경 없이는 하반기는 돼야 종합대책이 나오고, 빨라야 내년에야 이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공세 대응을 위해서는 모든 규제에서 비켜나 있는 중국 플랫폼에 대한 실효성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중국 정부가 자국 업체를 보호하는 것처럼 우리나라 역시 국내 업체를 옥죄는 규제의 족쇄를 풀어주고, 산업경쟁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

파이낸셜투데이 한종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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