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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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숙과 임종석 중 누가 경제를 살릴 것으로 생각하십니까? 둘 다 아닐 수도 있고 둘 다 맞을 수도 있다.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한동훈은 그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의 머릿속에는 이미 두 사람에 대한 그림(평가)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엘리트주의에 기반한 오만과 편견이라고나 할까.

윤희숙에 대한 한동훈의 역성에 당사자들이 서로를 타격하는 공방을 벌였다. 윤희숙 전 의원은 임 전 실장을 향해 “경제를 입에 올릴 기본 지식도 없다는 게 뽀록났다”고 쏘아붙였다. “환율 때문에 달러 소득이 줄었다고 경제가 실패했다는 건 무식하기 짝이 없는 말”이라면서 “본인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되려 마음이 짠해진다”라고도 했다. 임 전 실장이 “민생경제 파탄의 주범은 윤석열 정권”이라고 주장하자 이를 반박한 것이다. 전날 임 전 실장은 “IMF 국가부도 사태 이후 나라 경제가 최악의 상황”이라며 “1인당 국민 소득이 IMF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가 됐다”고 말한 바 있다.

윤 전 의원의 공세에서는 경제 공부를 많이 했다는 우쭐함이 넘쳐난다. 더 두고 볼 일이지만 임종석과 윤희숙은 서울 중·성동갑에서 격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앞서 한 위원장은 김경률 비대위원을 정청래 최고위원 지역구인 서울 마포을의 맞춤형 후보로 내세울 것 같은 발언을 했다. 논란 끝에 김경률 비대위원이 출마 의사를 접었지만, 이를테면 ‘불의 고리’(마이클 샌델;<공정하다는 착각>) 하나를 통과한 ‘엘리트’를 저격수로 쓰겠다는 전략이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이 이끄는 국민의힘은 영입 인사인 호준석 전 YTN 앵커를 전대협 초대 의장을 지낸 이인영 전 통일부 장관의 지역 서울 구로갑에 단수 공천한 데 이어 윤석열 정부에서 승격된 국가보훈부의 초대 장관을 지낸 박민식 전 장관을 민주당 김민석 의원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을에 포진시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민주당 ‘86 운동권’이 자리 잡은 지역에 여권 ‘엘리트’ 인사를 투입하는 ‘자객’ 공천을 이어 가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한동훈은 지난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반칙과 특권의 청산을 위한 운동권 정치세력의 역사적 평가’ 토론회에 보낸 서면 축사를 통해 “이들은 과거 운동권이었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의 정치 주류로 자리 잡았다”며 “국민과 민생은 도외시하고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았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86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은 시대정신”이라며 “이들이 이번 총선에서 퇴출당하지 못한 채 22대 국회에서도 계속된다면 대한민국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운동권 세력을 청산한다는 이슈 파이팅이 이번 총선의 주요 전략임을 분명히 한 셈이다.

그의 주장과 믿음을 탓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가 말하는 ‘운동권’이라는 말을 야권에서 비판하고 있는 ‘검사’라는 단어로 치환해 보면 어떨까.

<검사들은 젊어서 사법시험에 합격했다는 이유 단 하나만으로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의 주류로 자리 잡았다. 국민과 민생은 도외시하고 나라의 발전을 가로막았다. 특권 세력이 된 정치 검사 청산은 시대정신이다. 이들이 이번 총선에서 퇴출당하지 못한 채 22대 국회를 좌지우지한다면 대한민국은 미래로 나아가지 못하고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다.>

한동훈의 머릿속에는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는 ‘범생’ 혹은 ‘엄친아’는 옳으며 능력이 있고, 독재의 ‘제도’를 박차고 나가 소위 ‘민주화 운동’을 한 ‘반체제’들은 틀렸으며 무능하다는 확신이 있는 듯하다. 비뚤어진 ‘엘리트주의’가 그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고 해야 할까.

그가 일으켜 세운 ‘시대정신’이라는 단어는 흔들거리는 영혼을 서늘하게 일깨우는 단어다. 맞다. 각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시대에 맞는 ‘시대정신’과 ‘소명의식’이 있다. 각자 처한 환경과 성향에 따라 그것은 여러 무늬를 띌 것이다. 임종석에게는 임종석의, 한동훈에게는 한동훈의 ‘시대의식’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법시험 합격이 될 수도 있고 독재타도가 될 수도 있다. 어느 것이 우월하고 어느 쪽이 더 가치 있는 일인지는 비교의 대상이 아니다. 둘 다 ‘불의 고리’다.

토머스 네이글이 말한 ‘스마트한 사람과 우둔한 사람’의 프레임, 능력주의적 오만의 민낯이 어른거린다. 거들먹거리는 엘리트 의식과 저열한 콤플렉스가 혼재된 의식의 소유다.

한 위원장의 ‘운동권 청산’ 전략이 총선 승리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과거 야당 심판론이 성공한 사례는 17대와 21대 총선 정도다. 지금은 정권과 야당 심판론이 비슷하고,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상황이 많이 다르다.

때문에 한 위원장의 ‘운동권 청산’ 프레임이 한계를 가졌다는 관측도 많다. 선거 승리의 관건은 민주당 성향이 강한 4050세대를 얼마나 끌어올 수 있느냐인데, 운동권 세대의 명암을 알고 있는 그들이 한 위원장의 일방적 프레임에 공감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YTN 여론조사 결과도 참고할 만하다. 한동훈의 주장에 공감하느냐는 질문에 국민들의 39%가 동의한 반면, 49%는 동의하지 않았다.

한동훈은 엘리트 의식만 강한 게 아니다. 그는 연고주의(緣故主義)에도 남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TK는 저의 정치적 출생지입니다”, “저는 충청도에서 자라 말이 느렸는데 서울에 와서 서울 사람들과 어울리며 말이 빨라졌습니다” 등등 기가 막히다. 충청도 말이 느린가? 그렇지 않다. 서울말과 스피드 면에서 무슨 차이가 있는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강원도에서 고등학교에 다녔다”는 그에게 전국 어느 곳 하나 연고가 없는 곳이 있을까? 연줄 대기에 명수인 그에게서 “저도 고지혈증이 있습니다” “저도 당뇨인입니다”라는 말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을 것 같다. ‘엘리트’라는 그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폼 잡기 좋아하는 그의 성향은 몇 가지 언행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한 위원장은 지난달 11일 부산에서 비대위를 마친 뒤 앞으로의 공천 방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저는 이 당(국민의힘)에 아는 사람이 없다. 그리고 당 외에 있는 사람을 아는 사람이라고 밀어줄 정도로 멜랑꼴리한 사람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멜랑꼴리’(melancholy)? 유식하고 멋진 말 같은데 무슨 뜻으로 썼을까. 전후 문맥이 안 맞는다. 현란한 단어를 골라 쓰려다 머리와 혀의 스텝이 꼬인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는 얼마 전 ‘여의도 문법’이라는 말을 써 상당한 재미를 봤다. 화법과 문법의 차이가 뭔지는 차치하고라도 무슨 문법, 무슨 사투리 운운하는 것 자체가 교언(巧言)이다.

잘나가는 그에게 충고 하나를 던진다면, 그건 “좀 소탈해지라”는 것이다. 눈빛을 선하게 하고 말을 편하게 하고 폼을 너무 잡지 말라는 것이다. 그는 분명 스타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정치인과 연예인은 다르다. 정치인이 스타가 되려는 순간 그는 조롱의 대상으로 전락한다.

한동훈이 요 며칠 내놓은 개혁 과제들은 그 나름 큰 의미를 갖는 것들이다. 그중 국회의원 세비 문제가 돋보인다. 국민이 여의도 의사당에 실망한 지는 이미 오래다. 민생 관련 법안이 산더미 같아도 정치싸움 이외엔 남의 일이다. 여야를 가릴 것 없다. ‘착각은 자유’라는 말이 있지만 지지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은데 서로 옳다고, 너도나도 국민 편이라고 우기면서 많이들 지겨워하는 언행을 매일 되풀이하고 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무노동 무임금’도 노동자들에게나 해당하는 얘기다. 이대로 가다간 국회 무용론이 나오지 않을까 염려될 정도다.

민주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특권을 없애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고, ‘지대’(地代)가 너무 높은 의원 보수체계와 대우를 확 낮춰야 한다는 주장도 커지고 있다. 이번 총선에도 배지를 달겠다고 달려드는 전현직 검사가 여야를 합쳐 45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 좋은 자리들을 버리고 너도나도 여의도로 몰려드는 이유가 뭔가. 대우가, ‘마진’이 너무 좋다는 것이다. 보다 못한 국민들이 절망감 속에 내놓는 지적들이다. 한동훈이 이런 국민들의 바람을 어떻게 구체화하고 현실화할지 기대를 갖고 지켜볼 일이다.

잔재주만 있고 큰 철학이 없는 정치인은 국가적 지도자는 될 수 없다. 사직구장 사진까지 찾아내 지역 연고를 강조하는 일은 이번으로 끝낼 일이다. 김영삼 대통령은 ‘대도무문’(大道無門)이라는 말을, 김대중 대통령은 ‘경천애인’(敬天愛人)이라는 말을 평생 신념으로 삼고 정치를 한 사람이다. ‘거인’의 풍모가 엿보인다. 한동훈은 무슨 경구(警句)라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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