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김만흠 한성대 석좌교수, 전 국회입법조사 처장

국민의힘 인요한 혁신위원장이 혁신안 2호를 발표하면서, 당의 중진ㆍ친윤 실세들의 헌신을 요구했다. “당 지도부 및 중진, 대통령과 가까이 지내는 의원들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하거나 수도권 어려운 지역에 나와서 출마하는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했다. 불체포특권 전면포기, 국회의원 정수 10% 감축. 의원 구속시 세비 전액 박탈 등 혁신위가 의결한 혁신안보다도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당내 가장 큰 기득권이 걸린 사안이기 때문이다. 22대 총선의 당내 후보 공천 지형이 요동칠 수도 있다. 혁신위에 냉소적이던 홍준표 대구시장도 ‘시원하게 한번 내지르네’라고 했다. 다만 이 제안이 수용될 수 있느냐의 문제가 관건이다.

민주당에서는 국민의힘 혁신안을 두고 윤 대통령의 국정기조 변화라는 본질을 비켜간 쇼라고 폄하했다. 여당에 대한 야당의 전략적 공세이기도 하다. 지난 보궐선거 참패의 핵심 원인만을 놓고 본다면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과 관련된 실세들의 기득권 포기는 여당의 당정관계에서 아주 중요한 변수다. 중진들의 희생이 선거전략상 도움이 될지 불투명하다는 반발도 바로 나오고 있다. 이 혁신 제안이 일방적 요구에 그치고 만다면, 대통령 국정운영 방식의 변화 외에 다른 혁신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희생 요구에 일부가 화답하는 절충 형태로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

혁신 제안의 이행 여부와는 별도로 이제 정치인이 희생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인요한 위원장의 발언은 정치혁신의 맥을 제대로 짚은 명제였다. “그동안 국민이 희생을 했고 정치인이 이득을 봤는데,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이제는 정치인이 희생을 감수하고 국민에게 이득이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희생이라기보다 사실은 ‘특권 내려놓기’다. 유권자인 국민이 정당을 주도해야 하는데, 정당이 국민을 규율하고 특권을 누려왔다. 정치권력을 독점하는 이권단체, 카르텔이 돼 있다. 여당 실세들을 향한 희생 요구는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과 맞물린 불만 요인을 해소하는 긴급조치이기도 하지만, 카르텔 조직이 된 한국 정당의 혁신안이기도 하다.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한 공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정치 자신이 더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문제는 정치다’라는 명제가 딱이다. 사회적 문제 해결 이전에 정치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이고, 그것이 정치혁신이다. 사회경제적 이권 카르텔 문제를 지적하고 있는데, 사실은 최고의 권력이권 카르텔이 우리나라 정당, 특히 큰 정당들이다. 대기업의 독과점을 해소하는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면서, 막상 자신들은 기성 정당 독과점체제를 제도적으로 보호하고 있다. 경제민주화 이전에 정치민주화의 과제와 먼저 마주해야 한다. 국민 통합이 정치의 기능이라지만, 오히려 우리 사회 갈등과 분열의 핵심이 정치적 진영에 따른 갈등이다.

2021년 말 미국의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대상 17개 경제선진국 중 15개국에서 정치적 갈등이 가장 큰 사회분열 요인이었다. 그중에서 특히 미국과 한국이 가장 심각했다. 알다시피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치적 진영에 따른 문제는 중립적이어야 할 공적 기구, 나아가 사법부까지도 오염돼 있다. 국가기구의 제도적 안정이 오히려 후퇴하고 있다. 공영방송을 비롯한 언론도 그렇고 언론의 공정성을 다루는 방통위원회까지도 정권 편향 논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SNS 시대와 결합한 가짜뉴스 문제가 가장 심각한 곳도 정치 영역이다. 근래 정파적 세력들이 유사 종교집단처럼 돼 있다. 무조건적으로 충성하고 주도세력에 대한 비판이나 이견은 신성모독으로 간주한다. 광신도와 다름없는 강경 지지세력은 홍위병이 돼 비판세력에 정치적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용산 전체주의, 개딸 전체주의와 헤어지자’는 최근 어느 토론회의 구호가 새삼스럽지 않다.

선악 이분법의 진영정치, 정치세력의 종교집단화, 가짜뉴스와 음모론을 동원한 선동정치, 마치 근래 한국 정당정치의 뉴노멀처럼 돼 버렸다. 이제는 정치인이 희생해야 한다는 인요한의 문제제기와 더불어, 민주화 이후 길을 잃고 권력이권을 둘러싼 카르텔이 돼버린 한국정치를 개혁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힘을 발휘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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