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사진=연합뉴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이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대표가 자신에게 사퇴를 요구했다고 주장한 것을 놓고 더불어민주당 안팎에서 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팩트의 진위 여부를 떠나 이재명 대표 지지자들과 문재인 전 대통령, 이낙연 전 당 대표 지지자들이 서로 엉키며 자기주장만을 펼쳐 갈등이 격화되고 있습니다.

추 전 장관은 지난달 30일 한 유튜브 방송 인터뷰에서 “장관직에서 물러난 것이 문 전 대통령이 물러나달라고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추 전 장관은 문재인 정권 때 법무부 장관으로 재직하다가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거센 권력 충돌을 빚다가 취임 1년 만인 2020년 12월 16일 문 전 대통령에게 검찰총장 징계를 제청한 뒤 사의를 표한 바 있습니다.

이때 알려진 것은 추 전 장관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검찰개혁 등을 두고 논란을 일으키다가 그 책임을 지고 자신이 직접 사퇴의사를 표명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최근 추 전 장관은 지금까지 알려진 ‘자진 사퇴’를 뒤집고 당시 자신이 사직서를 낸 적이 없고 문재인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퇴진을 종용받았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추 전 장관은 한 인터뷰에서 “2020년 12월 16일 윤석열 총장에 대한 징계 의결이 새벽에 이뤄지고 아침에 출근 직후 청와대 (노영민) 비서실장으로부터 사직서를 내달라고 전화를 받았으나 명확하게 거절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그는 “오후에 제가 (청와대로) 들고 간 징계 의결서가 대통령 서명으로 집행된 직후 바로 대통령의 ‘물러나달라’는 말씀으로 제 거취는 그 순간 임명권자가 해임한 것이므로 저의 사직서가 필요 없어져 버렸다”고 부연했습니다.

또한 추 전 장관은 문 전 대통령이 사퇴를 종용한 배경에 대해서는 “당에서 재보궐 선거를 치러야 하니 검찰 이슈가 퇴장해야 한다는 논리로 저의 사퇴를 요구했다고 들었다”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대립하며 검찰개혁에 매진했으나 결국 문 전 대통령과 집권 세력의 ‘안위’를 위해 ‘토사구팽’을 당했다는 취지입니다.

문재인 정권의 핵심 인물이었던 추 전 장관이 자신이 몸담은 권력을 향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문 전 대통령에게 도덕적 타격을 안기는 심각한 사안입니다. 추 전 장관은 ‘잊힌 사람으로 돌아가고 싶다’던 문 전 대통령을 ‘자기 정치’ 펌프용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추 전 장관의 ‘불순한 의도’에 대해 문재인 정권 때 청와대에 근무했던 인사들이 반발하고 나섰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신인 최재성 전 청와대 정무수석은 한 인터뷰에서 “(추 전 장관) 본인이 본인의 뜻으로 당시에 장관을 그만둔다고 해놓고 지금 와서 문 대통령이 그만두라고 했다는 것은 우선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일축했습니다. 이어 “제가 잘 알지만 문 대통령이 ‘그만두라’ 그렇게 얘기 안 했다”며 “문 전 대통령은 누구 보고 딱 잘라서 ‘그만두라’고 하실 분도 아니다”고 반박했습니다.

민주당에서도 추 전 장관이 뜬금없이 ‘문 전 대통령에게 자신이 부당하게 잘렸다’는 주장을 하는 배경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당 안팎에서는 “추 전 장관이 내년 총선 공천을 앞두고 확실히 ‘친명계’(친 이재명계)로 갈아타기 위해 무리하게 문 전 대통령까지 끌어들이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습니다.

일단 문 전 대통령이 추 전 장관의 주장에 대해 가타부타 ‘팩트’를 확인해주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떤 쪽의 주장이 맞는지 정확하게 확인할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친명계’와 ‘비명계’(비 이재명계)는 이 문제를 두고 명확하게 엇갈린 ‘정치적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당 대표 선거에서 이재명 대표를 밀었던 송영길 전 대표는 추 전 장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송 전 대표는 이 문제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해임시킨 걸로 봐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자신이 팩트를 확인한 것이 아니라 ‘정황상’ 문 전 대통령이 ‘해임 명령’을 내린 것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표의 강성 지지층으로 불리는 ‘개딸’(개혁의 딸)들도 일제히 추 전 장관의 발언을 옹호하고 나섰습니다. 민주당 당원 게시판을 살펴보면 한 당원은 ‘이재명 다음 대통령은 추미애’라며 ‘먼저 이재명 대통령 빨리 만들자’고 했고, 또 다른 당원은 ‘추미애, 추장군, 추다르크 파이팅’이라며 ‘더 세게 나가달라. 적들이 겁내고 있다. 더 세게 폭주기관차처럼 달려달라’고 응원했습니다. 이재명 대표 팬카페 ‘재명이네 마을’에도 ‘추미애 절대 지켜’, ‘추미애가 옳았다’, ‘추미애의 용기를 응원한다’ 등의 반응이 올라오고 있습니다.

반면 문 전 대통령과 이낙연 전 대표 지지자들은 추 전 장관을 맹비난하고 있습니다. 한 당원은 ‘정치를 그렇게 지저분하게 하면 안 된다. 추윤갈등을 일으켜서 온갖 분란 다 만들고 나라 시끄럽게 해서 윤석열 체급 키워준 사람이 누군가’라며 ‘노무현 대통령 등에 칼 꽂고 탄핵하더니 이제는 본인을 등용한, 본인이 모신 대통령이 퇴임한 지 1년 만에 제대로 뒤통수를 친다. 이게 도의적으로 맞는 행동인가’라고 직격했습니다.

추 전 장관의 주장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검찰개혁에 대한 굳건한 의지를 관철해내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잘라 사태를 어정쩡하게 마무리하려 했다’는 뉘앙스를 주고 있습니다. 당시 문 전 대통령의 행보는 추 전 장관만 ‘정리’하고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은 그대로 둠으로써 외견상 ‘검찰개혁 실패’로 간주될 수도 있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추 전 장관의 ‘부당 해임설’은 앞으로 민주당이 더욱 뚜렷하게 개혁노선을 견지해야 한다는 ‘친명계’와 개딸들의 비타협적 강경 노선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특히 추 전 장관은 이재명 대표를 한껏 띄우며 자신이 확실히 ‘친명계’임을 드러내려 합니다. 그는 이 대표에 대해 “(이 대표는) 오히려 사법 피해자. 검찰 정권이 사법리스크를 만들어가는 건데, 이 사법 피해자 보고 ‘당신 때문’이라고 집안 싸움에 전념하고 있어 너무 답답하다”고 밝혔습니다.

민주당에서는 추 전 장관이 두 번씩이나 전직 대통령을 배신하고 자기 정치를 하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습니다. 추 전 장관은 지난 2004년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때 최선두에 서서 ‘동지’를 배신한 데 이어 이번에는 자신을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해 대권주자로까지 밀어준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해서도 보은은커녕 등에 칼을 꽂는 후안무치한 ‘민폐 정치’를 서슴지 않았습니다.

금배지가 의리보다 더 소중했던 것일까요. 추미애의 정치는 신의와 일관성보다 변절과 상황 논리가 지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 전 장관이 이번에는 이재명 대표를 지지하고 있지만 이 대표가 ‘사법 리스크’로 낙마한다면 또 어떤 논리로 그를 버릴지 궁금해지네요.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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