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장동 개발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50억 클럽'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해 26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진=연합뉴스
대장동 개발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이 '50억 클럽' 의혹의 핵심 당사자인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해 26일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사진=연합뉴스

검찰이 대장동 개발비리 사건의 몸통 중 하나로 지목돼온 박영수 전 특별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엄희준 부장검사)는 지난 6월 26일 박 전 특검에 대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수재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그의 최측근 양재식 전 특검보도 공범으로 보고 같은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습니다.

박 전 특검은 대장동 민간 개발업자들을 돕는 대가로 금품을 받거나 받기로 약속했다는 이른바 ‘50억 클럽’의 핵심멤버로 사건 초기 단계부터 지목을 받았습니다. ‘50억 클럽’ 의혹이 불거진 지난 2021년 9월부터 박 전 특검 딸이 화천대유에 근무하며 회사 몫의 아파트를 분양받아 수억대의 시세 차익을 봤다는 의혹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그동안의 서울중앙지검 수사에 따르면 2014년과 2015년 김만배씨 등이 대장동 개발 컨소시엄을 구성할 당시에 박 전 특검은 우리은행 컨소시엄 참여 등의 대가로 258억 원 상당의 금품을 수수하거나 약속받은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검찰은 박 전 특검이 2014∼2015년 우리은행 이사회 의장으로 재직하면서 대장동 개발사업과 관련해 남욱 씨 등 민간업자들의 컨소시엄 관련 청탁을 들어주는 대가로 거액의 돈을 약속받고, 실제로 8억원을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가운데 3억원을 2015년 대한변호사협회장 선거 자금 명목으로 받았다는 것이 검찰 판단입니다.

이런 저런 의혹으로 검찰이 박 전 특검 수사에 착수한 게 2021년 9월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동안 검찰은 ‘제기된 의혹 전반에 대해 수사를 진행중’이라는 하나마나한 말만 되풀이 하면서 수사 자체를 뭉개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3월 30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50억 클럽’ 특검법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상정되자 검찰도 그제서야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정치권에서는 “검찰이 특검법 상정과 동시에 태도가 돌변한 것은 자칫 ‘박영수 수사’의 후폭풍이 검찰 조직으로 밀어닥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검찰이 특검에 ‘50억 클럽’ 수사의 주도권을 넘겨줄 경우 그동안 석연치 않은 이유로 뭉개기를 한 것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검찰 내 주류인맥의 ‘우두머리’로 통하는 ‘박영수 라인’이 지금도 검찰에 광범위하게 포진해 있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는 상황에서 그 ‘조직’이 외력에 의해 ‘난도질’ 당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다는 해석입니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박 전 특검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21개월 동안 박 전 특검에 대한 수사를 미적거린 검찰이 특검법과 여론에 등 떠밀려 일단 ‘구속’으로 상황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이 말은 곧 검찰의 적극적 수사 의지와도 직결되는 부분입니다.

‘50억 클럽’ 의혹이 처음 제기된 건 2021년 9월이었습니다. 대장동 비리 연루자인 회계사 정영학씨의 메모에서 6명의 실명이 거론됐는데 그 중에서 5명이 고위 판검사 출신이라 사실상 ‘법조계의 이권 카르텔’에 의한 조직적인 범죄라는 해석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고위법조계 인사 5명 중 검사 출신인 곽상도 전 의원만 기소돼 비판이 일었고 그마저도 곽 전 의원의 아들이 대장동 일당에게서 퇴직금 명목으로 받은 50억 원은 뇌물죄 무죄가 선고돼 검찰은 ‘제 식구 감싸기’라는 거센 후폭풍이 직면했습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최서원으로 개명)를 국정농단 재판에서 ‘경제 공동체’로 엮어 중형을 선고받게 한 검찰이 곽상도 전 의원과 아들의 ‘부자지간 경제 공동체’ 입증에는 실패했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죄 유도용’ 봐주기 수사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한 특검법 상정이 지난 3월 있었고 검찰도 더 이상 ‘검찰 인사 봐주기’ 논란을 뭉개고 갈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린 것입니다. 그래서 박 전 특검의 구속영장 청구는 당연히 예정된 수순이라는 게 법조계의 공통된 시각입니다.

하지만 여론에 등 떠밀려 박 전 특검을 일단 구속한 검찰이 향후 재판과정에서도 ‘엄정한 수사의지’를 관철시켜 나갈지는 미지수입니다. 곽상도 전 의원도 아들의 50억 ‘입금’에 대해 무죄를 받았던 만큼 박영수 전 특검도 재판 과정에서 무죄나 최소한의 처벌을 받을 수 있게 검찰이 적극적인 수사를 하지 않거나 낮게 구형을 때릴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검찰이 ‘박영수’라는 검찰의 상징적인 인물을 수사하다 보면 그와 연루된 또 다른 검찰관련 인사들이 고구마 줄기처럼 쏟아져 나올 가능성도 있고 이럴 경우 가까스로 문재인 정권의 ‘검수완박’을 저지한 검찰이 다시 개혁의 도마 위에 오를 명분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권 일각에서는 검찰이 조직 전체를 보호하고 대장동의 불길이 더 윗선으로 번지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이번에 박영수 전 특검을 ‘희생양’으로 삼아 사건을 마무리 지으려 한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습니다. 박 전 특검도 ‘조직 보호’라는 명분으로 ‘후배’들을 위해 자신이 책임을 지는 모양새가 차후를 도모하는 데 더 낫다는 판단을 했을 수도 있습니다.

박 전 특검이 검찰의 재수사를 앞두고 기존에 사용하던 휴대전화 내용물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부순 사실을 파악한 것으로 전해진 점은 심상치 않은 대목입니다. 특히 그는 주변인을 통해 사무실 내 PC 기록 등을 삭제하고, 서류를 폐기하는 등 상당히 적극적이고 조직적으로 증거를 인멸한 정황도 포착됐습니다.

또한 검찰은 박 전 특검과 양 전 특검보가 앞서 검찰에 소환된 대장동 사건 관계인들에게 접촉한 정황도 포착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검찰은 이를 통해 조사 내용을 파악하거나 진술을 회유하려 했던 것으로 의심하고 있습니다. 박 전 특검의 이런 ‘조직적 은폐 시도’에 대해 한 법조계 인사는 “누구보다 검찰 수사의 경로를 잘 아는 박 전 특검이 구속되기 전 후배 검사들이 윗선과 얽히지 않게, 또한 골치 아프지 않도록 깔끔하게 정리를 해준 것”이라고 추측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검찰은 21개월 동안이나 박 전 특검의 활동을 사실상 방치하면서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됐습니다. 박 전 특검이 구속되더라도 이미 증거나 진술이 광범위하게 ‘오염’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검찰이 재판과정에서 유죄를 받을 정도의 의미 있는 증거를 찾아내는 것도 쉽지 않다는 예상도 나옵니다.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대장동 사건과 관련된 유죄를 밝히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민주당은 검경수사권 분리를 통해 검찰의 정치적이고 자의적인 수사의 폐해를 줄이고자 했지만 결국 그 개혁은 실패했습니다. 하지만 검찰이 지금도 조직 내에 ‘박영수 라인’이 광범위하게 포진돼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봐주기 수사’ 비판까지 받을 경우 검찰 개혁 여론이 다시 끓어오를 가능성이 높습니다.

박영수 전 특검에 대한 수사는 단순히 ‘50억 클럽’을 수사하는 것이 아니라 검찰의 중립성을 가늠해보는 결정적인 리트머스 시험지가 된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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