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김은경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으로 임명된 김은경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6월 15일 혁신위원장으로 김은경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임명했습니다. 지난 5일 천안함 자폭 발언 등으로 임명 당일 9시간 만에 이래경 다른백년 명예이사장이 낙마한 후 열흘 만에 이뤄진 후속 인사입니다. 민주당은 전당대회 돈 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의 거액 투자 의혹 등으로 안팎으로 쇄신 요구가 이어지자 외부 인사를 통해 대대적인 당 개혁 작업에 나섰습니다.

김 위원장은 정치에 있어서 거의 ‘문외한’입니다. 그는 한국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만하임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은 보험법 전문가입니다. 금융감독원에서 분쟁조정위원, 제재심의위원 등을 역임했고, 한국소비자원 분쟁조정위원회 조정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0년 금융감독원 부원장으로 임명돼 지난 3월까지 3년 임기를 꼬박 채웠습니다.

2015년 당시 문재인 대표가 이끌던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무감사위원으로 활동한 것이 정치활동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재명 대표와도 일면식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당연히 특정 계파와의 친분도 거의 없는 ‘무계파’로 분류됩니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김 위원장 인선 배경에 대해 “김은경 교수는 온화한 성품의 소유자이지만 원칙주의자적인 성격의 인물로 알려졌다. 금융법과 소비자 보호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분이고 어려움에 처해있는 금융 약자들 편에서 개혁적 성향을 보여주신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정치권에 몸을 오랫동안 담은 분이 아니라서 참신성도 많이 반영됐다”고 덧붙였습니다.

정치권에서는 김은경 위원장 임명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습니다. 김 위원장이 발탁된 배경으로 ‘약자 보호와 개혁적 성향’ 그리고 ‘참신성’이 거론됩니다. 이는 민주당의 진보적인 당 정체성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정치에 몸담은 적이 없는 참신한 인물이라는 점도 여론의 지지를 보다 용이하게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모읍니다.

김 위원장이 2016년 민주당 당무 감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서영교 의원과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중징계를 내린 데 관여한 점을 두고 ‘과단성이 있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문재인 정권 금융감독원 부원장 시절에도 “외압이 있어도 밀고 나가는 스타일” “강단 있는 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김은경 위원장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더 크게 들립니다. 이는 김은경 위원장의 ‘정치적 자질과 경쟁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의 오랜 ‘기득권’과 싸워야 하는 권력투쟁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김 위원장이 과단성과 개혁성향이 있지만 민주당의 ‘서열의식’과 계파정치의 강고한 벽을 뚫을 수 있을지는 회의적입니다.

김 위원장보다 정치 경륜도 있고 인맥네트워크도 훨씬 넓었던 김상곤 전 교육부 장관도 2015년 당 혁신위원장 미션 수행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김상곤 당시 위원장은 출범 146일 만인 2015년 10월 19일 공식 해산하면서 11차례에 걸쳐 내놓은 혁신안을 당헌·당규에 반영하는 성과를 거뒀다고 자평했습니다.

하지만 혁신위 해산과 동시에 그것을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진행돼 사무총장직 폐지는 단 1년 만에 부활하는 등 혁신안이 무용지물이 됐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이는 친명계 등 당 주류들이 김은경 위원장의 혁신안을 ‘일단’ 받아준 뒤 상황을 봐서 다시 없었던 일도 되돌리는 방식으로 기득권을 유지할 것이라는 우려를 낳게 하는 대목입니다.

특히 김은경 위원장이 ‘혁신의 범위’를 어디까지 잡을 것인지가 이번 혁신위의 최대 핵심이 될 전망입니다. 김 위원장과 민주당 ‘친명계’(친 이재명)가 당의 혁신 기준점을 ‘이재명을 포함한’으로 할지 ‘이재명만 빼고 전부’로 할지가 최대 관건인 것입니다.

민주당이 스스로 자기개혁을 한다며 외부 인사를 초빙했다는 것은 지난 대선 패배 이후 당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문제의 핵심 중 하나가 바로 이재명 대표의 리더십과 ‘사법 리스크’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사진=연합뉴스

돈 봉투 의혹과 김남국 의원 코인 거래 등도 있지만 당 쇄신작업에서 ‘이재명’이 빠진다면 여론은 혁신위원회를 이재명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명분 쌓기용’이자 ‘들러리’로 평가절하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혁신위는 민주당이 대선 패배에 대해 진심으로 반성하고 능력 있는 수권정당으로 거듭나려는 진정성을 보여주는 자세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혁신의 대상에 그 어떤 ‘성역’도 있을 수 없습니다.

일단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1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혁신기구가 우리 당과 정치를 새롭게 바꿀 수 있게 이름부터 역할까지 모든 것을 맡기겠다”며 김 위원장에게 전권을 위임할 의사가 있음을 내비쳤습니다.

그런데 당 안팎에서는 김 위원장이 혁신위 수장을 수락하기 전에 이재명 대표 및 친명계와 최소한의 ‘사전조율’을 거쳤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옵니다. 김 위원장이 이 대표나 친명계와 큰 인연은 없지만 그들과 어느 정도의 교감을 나누고 직을 수락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김 위원장은 임명 직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돈봉투 사건에 연루된 윤관석·이성만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대해 “돈봉투 사건이 (검찰에 의해) 만들어졌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료를 보고 판단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친명계의 ‘검찰 정권 편파 수사 프레임’과 정확히 궤를 같이 하는 것이라 벌써부터 양측의 ‘사전 교감설’이 불거지고 있습니다. 

또한 김 위원장은 의례적으로도 ‘혁신의 전권’을 요구했을 것이고 당도 그 부분에 대해 ‘내락’을 했을 수 있습니다. 이 대표가 공개적으로 ‘모든 것을 맡기겠다’고 강조한 점도 김 위원장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김 위원장이 혁신위 추진 과정에서 친명계와의 갈등으로 독자적인 쇄신을 강행하는 ‘과단성’을 보일 경우 문제는 복잡해집니다. 양측이 혁신의 전권과 ‘이재명을 포함한’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명확한 문서를 작성한 것이 아니라 ‘교감’ 정도로만 ‘협의’했을 경우 오해와 갈등이 일어날 소지도 다분합니다. 특히 ‘혁신의 전권’과 ‘이재명을 포함한’이라는 부분은 향후 양측이 서로 ‘해석의 차이’로 어긋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벌써부터 당내 주류 기득권들은 김 위원장 체제 출범을 앞두고 묘한 기류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친명계 핵심인 정청래 최고위원은 김 위원장을 향해 “나라의 주인이 국민이듯이 민주당의 주인은 당원이다. 이재명 지도부는 당원이 주인인 정당을 만든다고 공약했다. 당원과 소통이 잘되는 민주정당, 당원이 주인인 정당을 만드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현재 민주당은 ‘개딸’같은 강성지지층과의 ‘결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개딸들의 정치 지향점 중 핵심이 바로 ‘당원이 주인인 정당’입니다. 틀린 말이 아니지만 이는 중도층 등을 타깃으로 한 외연확장과는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난제입니다.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기 위해 김은경 위원장이 중도지향적인 혁신안을 밀어붙일 경우 ‘당원 주인 정당’을 주장하는 강성지지층과 친명계 주류의 저항을 부를 수 있고 이는 혁신위의 ‘좌초’로 이어질 개연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김은경 혁신위원장 체제의 성공 여부는 이재명 대표에게 달려 있습니다. ‘나를 밟고 민주당을 살려내라’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김 위원장에게 던져준다면 혁신위는 성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만 빼고 다 바꾸라’고 은근히 압박한다면 혁신위는 하나마나한, 시간낭비에 그칠 전망입니다.

일각에서는 혁신위원장으로 유력하게 검토되었던 김태일 전 장안대 총장이 탈락한 것을 두고 ‘혁신위는 이미 물 건너갔다’는 평가도 나옵니다. 김 전 총장이 ‘이재명을 포함한 진짜 혁신’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