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미국을 국빈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정권 들어 여야의 ‘누가 누가 더 못하나’ 경쟁이 더 심화됐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여야는 서로를 ‘악마화’ 하는 데만 혈안이 돼 있습니다. 상대 진영의 실수와 패착을 물고 늘어질 뿐 자당의 쇄신이나 도덕성 제고는 뒷전입니다. 오로지 상대가 자살골 넣기만 기다렸다가 골이 터지면 박수 치며 좋아합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차악의 경쟁’이나 ‘적대적 공생 관계’로 일컫습니다.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외교안보 리스크’에다 ‘허수아비 김기현 대표 체제’ ‘김건희 여사 특검’ 등의 구조적 문제점을 노정하고 있습니다. 야당은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송영길 돈 봉투 의혹’과 최근에는 민형배 의원의 복당도 여당이 물개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아이템들입니다.

그냥 가만히 있어도 상대가 죽을 쒀 주니 뭐 자체적으로 쇄신하거나 국민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최근 윤 대통령이 미국 국빈 방문으로 외교안보 열정을 쏟아내고 있지만 잇단 설화로 그 빛이 바래고 있습니다. 야당은 당연히 그 뒷공간을 치고 들어가 지지율을 올려야 정상인데 ‘돈 봉투 사건’으로 지지율이 오히려 떨어지는 촌극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누가 누가 못하기 경쟁’으로 치닫다 보니 여야의 지지율은 박빙의 ‘도토리 키 재기’가 돼 가고 있습니다. 여야의 ‘못하기 경쟁’에 신물이 난 국민들은 무당층이 급증하는 것으로 그 반감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 ‘못하기 경쟁’에서 야당은 좀 더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여당이야 윤 대통령 단골 소재인 ‘국익’과 ‘자유 수호’를 위해, 그리고 지지율 1%라도 할 일은 하겠다는 대통령의 단호박 통치철학을 핑계 삼아 ‘여론에 일희일비 하지 않겠다’는 명분이라도 있습니다. 하지만 야당은 여론의 지지와 응원이 정국운영의 주요 동력입니다. 그래서 여론추이와 지지율에 있어서는 여당보다도 더 을의 입장입니다.

특히 야당은 집권세력(권력)보다 더 민감한 도덕적 감수성을 가져야 하고 윤리의식에 철저해야 합니다. 권력을 비판하는 게 주요 임무인 야당으로서는 자신들의 몸이 이미 더럽혀져 있다면 아무리 정권을 비난해봤자 국민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야당의 권위는 정권에 대한 도덕적 우월성에서 나옵니다. 그래야 권력에 대한 비판도 정당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의 행태를 보면 그들이 권력자로 보일 때가 많습니다. 180석 거대정당의 기득권 관성에다 정권까지 교체됐으니 아직도 몸에 권력자의 습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여당이 저 모양이니 우리도 좀 못해도 된다’는 간단한 자기변명과 안일한 정국 인식이 당을 지배하고 있는 듯합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햇빛과 바람, 마을기업 그리고 기본소득'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7일 국회에서 열린 '햇빛과 바람, 마을기업 그리고 기본소득' 토론회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불행하게도 그 ‘시발점’이 바로 이재명 대표입니다. 이 대표는 지난 4월 25일 국회에서 사회적경제위원회 출범식을 마치고 나가는 길에 취재진이 ‘송영길 전 대표의 출국금지 조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묻자 “박순자 의원 수사는 어떻게 되어 갑니까. 관심이 없으신가 보군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 대표는 전날인 24일에도 ‘송 전 대표의 기자회견을 어떻게 봤나’라는 취재진 질문에 “김현아 전 국민의힘 의원은 어떻게 돼 가고 있나. 모르는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이 대표도 사실 억울할 것입니다. ‘윤석열 검찰 정권이 민주당 씨를 말린다’는 인식이 강하게 박혀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돈 봉투’ 사건도 검찰의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만 가지고 물고 늘어지느냐’는 ‘반문’이 자동적으로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의 그런 ‘반문’은 국민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이 대표가 아무리 급하고 억울해도 ‘송영길-박순자’의 단순비교는 그 정치적 ‘중량감’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구차한 변명이자 책임전가로 보입니다. ‘남 탓’으로 자신의 곤궁한 처지를 모면해보려는 의도 또한 야당 대표로서 그리 당당해보이지 않습니다.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정치권의 오랜 병폐 중 하나가 프레임 전쟁이다. 우리의 잘못을 덮기 위해서 저쪽의 잘못을 들춰내고 프레임을 계속 갖다 붙이는 것”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이 대표의 발언에 대해 ‘당 대표가 가볍게 툭 내뱉을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원내대표나 중진급 책사들이 얼마든지 검찰의 ‘수사 공정성’에 대한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불뚝 성질’을 참지 못하고 직접 언급하다보니 대표의 권위에도 상처가 났습니다. 이 대표의 발언으로 국민들은 그의 ‘오만한 이미지’를 더 머릿속에 각인시키게 됐습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 송갑석 의원은 “(이 대표의 발언은) 상식적 수준의 문제 제기였던 것 같다”면서도 “그럼에도 기왕이면 대표가 직접 말하는 것보다는 다른 당내 인사들이 거론을 하면 더 좋았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은 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의 ‘공인 의식’이 부족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더 다듬고 성숙해지지 않으면 그 ‘성질’ 때문에 큰일을 할 수 없다”는 지적은 이 대표 측근들도 오래전부터 수없이 하는 조언입니다. 이 대표 특유의 냉소적이고 배타적인 언어 습관 때문에 불필요한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무소속 민형배 의원이 자신의 안건조정위원회 참여에 대한 국민의힘의 문제 제기 발언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한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무소속 민형배 의원이 자신의 안건조정위원회 참여에 대한 국민의힘의 문제 제기 발언에 대해 반박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민형배 의원의 복당도 민주당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주고 있습니다. 민 의원은 지난해 4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과정에서 민주당 출신 무소속 양향자 의원이 법안 졸속처리에 반대하자 탈당한 후 법사위에서 야당 몫 안건조정위원으로 참여해 입법을 밀어붙였습니다. 민 의원의 ‘꼼수 탈당’ 때문에 소수 정당 의견을 듣기 위해 국회선진화법으로 마련된 안건조정위가 무력화돼 민주당은 큰 비난을 받았습니다.

헌법재판소는 민 의원의 위장 탈당을 포함한 당시의 입법 과정이 ‘실질적 토론’을 보장하는 ‘다수결 원칙’상 헌법정신을 어겼다고 최근 판단했습니다. 민주당은 민 의원의 꼼수 탈당으로 헌법 정신을 어긴 정당이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사과는커녕 헌법재판소의 검수완박법 유효 결정을 명분으로 민 의원의 복당을 전격 처리했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당은 ‘돈 봉투’ 사건으로 국민들의 비판과 질타를 받고 있지만 여전히 당내에서는 ‘송영길은 물욕이 없는 사람’(김민석 의원)이라는 식의 뻔뻔한 정국 인식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민 의원 복당은 윤석열 대통령 설화나 김건희 여사의 특검 여부에 비하면 ‘새발의 피’라는 인식인 것 같습니다.

민주당은 야당으로서 권력을 비판하고 감시해야 할 책무가 막중합니다.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단단한 도덕성과 윤리적 정당성의 토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직도 민주당은 자신들이 국민의힘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잠재의식을 불쑥불쑥 드러내고 있습니다. 정치인을 평가하고 단죄하는 잣대는 민주당이 만드는 게 아니라 시대정신과 민심이 정하는 것입니다.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파이낸셜투데이 성기노 정치전문기자

 

저작권자 © 파이낸셜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