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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궁 칼럼] 방통위(放通委)는 백마고지(白馬高地)가 아니다

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2024-08-15     news
이궁 전 CJB청주방송 대표이사

6.25 전쟁 당시 대한민국 국군 제9보병사단과 중공군 38군 소속 3개 사단이 강원도 철원군 철원읍 서북방 395고지에서 벌인 전투, 백마고지 전투는 6.25 전쟁 중에서 가장 치열한 전투 중 하나다.

휴전회담이 난항을 겪던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철원평야 요충지인 백마고지(395고지)에서 벌어진 전투다. 한국군 백마부대가 중공군의 공격을 받고 혈전을 벌여 1만4000여명을 격멸하였다. 공중 폭격과 포격으로 민둥산이 된 모습이 마치 백마가 누워 있는 것처럼 보여 395고지 일대를 백마고지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마고지는 그리 높지 않으나 광활한 철원평야와 서울로 통하는 경원선과 국도 제3호, 즉 한국군의 보급로를 장악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였다. 휴전회담이 계속 결렬되는 상황에서 백마고지라는 전략적 요충지를 차지하기 위하여 한국군과 중공군은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국군과 중공군의 뺏고 빼앗기는 싸움이 반복되었다. 이렇게 전투가 계속된 10일 동안 고지의 주인이 무려 12번이나 바뀔 정도로 치열했다. 중공군 1만4000명, 한국군 3400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한국전을 전했던 외신의 리드가 인상적이다. “우리는 스무 차례 이상 (서로 고지를) 빼앗고 빼앗겼다.”(We won and lost more than 20 times)

이 백마고지 전투 같은 일이 우리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다. 여야가 공수를 거듭하면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이게 뭐 하는 짓들인가!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방송통신위원장 이진숙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통과시켰다. 이진숙은 취임 이틀 만에 직무정지 상태가 됐다. 대통령실은 즉각 “북한 오물 풍선과 야당의 오물 탄핵이 무슨 차이가 있느냐”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주당은 “방송 장악을 밀어붙이려는 윤석열 정권의 행태야말로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을 더럽히는 오물”이라고 받아쳤다. KBS와 MBC 경영진 선임을 둘러싼 정부 여당과 야당 간 주도권 다툼이 극한 대결로 치달은 것이다.

이 위원장에 대한 탄핵안은 무기명 투표 끝에 가결됐다. 방통위는 부위원장 김태규가 위원장 직무대행을 맡아 또 1인 체제가 됐다. 야당은 이진숙이 임명 당일인 지난달 31일 김태규와의 ‘2인 체제’에서 공영방송 이사를 임명한 것을 탄핵 사유로 들었다.

이진숙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을 받게 된다. 그녀는 입장문에서 “탄핵소추의 부당함은 탄핵심판 과정에서 밝혀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앞서 세월호가족협의회와 이태원참사유가족협의회, 민족문제연구소 등이 기자회견을 갖고 “이진숙 후보자는 도덕성과 자질은 물론이고 시대착오적 언론관, 극우 편향, 반민족적 반민주적 역사 인식 등 지금까지 본 적이 없고 앞으로도 만나기 어려운 역대 최악의 공직 후보자”라며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대통령 윤석열은 방송통신위원장 임명을 강행했다.

이진숙은 임명 당일 전체 회의를 소집해, 방통위 2인 체제에서 공영방송 이사들을 선임하는 ‘날치기’를 강행했다. 민주당 등 야당을 비롯해 시민사회단체가 강력히 반발하면서 정국이 시끄러워지고 있다.

여권 우위 구도로 재편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회가 법원의 태클을 지나 임기를 시작하면 이들은 MBC 사장 안형준의 해임 절차를 밟을 것으로 보인다. 힘으로 눌러서 굴복시키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우리 정치권은 다수당의 단독 입법과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가 되풀이되는 후진적 진영싸움을 계속하면서 국민들을 두 쪽으로 찢어놨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6∼8월 19∼75세 남녀 3950명을 대면 면접 조사한 연구 결과가 놀랍다. 정치 성향이 다르다면 연애와 결혼을 할 의향이 없다는 국민이 58%를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친구나 지인이라도 정치 성향이 안 맞으면 술자리를 할 뜻이 없다는 응답은 33%였고,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함께 할 수 없다는 답은 71%에 이르렀다.

이번 조사는 우리 국민들의 정치적, 이념적 갈등이 공론장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개인의 삶에 파고들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연애나 결혼은 물론이고 술자리나 사회·단체생활과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교제에까지 정치적 견해차가 큰 영향을 끼친다는 뜻이다. 지지하는 정치인이 서로 다를 경우 상대방과의 대화가 부담스럽고, 연애나 술자리 역시 불편하다는 것이다. 정치가 뭣인데 이 지경까지 됐을까. 큰일이 아닐 수 없다.

국민을 하나로 모으기 위한 통합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 갈등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정치권의 반성과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 진영논리로 매사를 재단해 왔던 일부 정치 고관심(高關心) 층도 이번 조사 결과의 시사점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

방통위 탄핵 전투를 생각해 보자. 국회-국가가 혼란스럽다. 방송통신위원회가 무슨 백마고지라도 된다는 말인가.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가 벌이는 ‘뺐고 빼앗기는’ 전투가 백마고지 전투에 다름 아니다.

물론 방통위는 중요한 국가기관 중 하나다. 여야의 이해관계가 대치되는 막강한 권한도 있다. 아무나 그 수장이 돼서는 안 되는 조직이다. 아첨꾼이나 곡학아세자, 진영의 노예 등 정치 모리배가 임명돼서는 안 되는 자리다. 조직이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되면 공동체에 엄청난 해악을 끼치게 된다.

이 방통위원장이라는 자리, 기가 막힌다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대통령은 임명하고 야당은 임명 다음 날 바로 탄핵을 한다. 야당은 ‘방송법’을 새로 만들고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 이게 나라 꼴인가. 애들 소꿉장난도 이렇게는 안 한다.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고 국회의원이 됐다는 말인가. 나라를 경영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철학과 책임 의식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차라리 다들 범인(凡人), 범부(凡夫)로 돌아가시라.

민주주의는 국민이 지배하는 정치형태를 말한다. ‘역사의 종언’(The End of History and the Last Man)이란 책으로 유명한 미 스탠퍼드대 교수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이른바 ‘비토크라시’(Vetocracy)라는 용어를 만들어 서로 타협과 협치를 모르는 미국의 양당 정치를 비판했다. 비토와 데모크라시의 합성어인 ‘비토크라시’는 상대 정파의 정책과 주장을 거의 무조건적으로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극단적인 파당 정치를 일컫는다. 직역하자면 바로 ‘거부 민주주의’다.

우리 정치가 바로 ‘비토크라시’가 된 지 오래다. 상대 진영을 불구대천의 원수쯤으로 생각하고 공격하는 ‘이전투구 정치’가 일상화됐다. 정말 갈 데까지 간 상황이다.

국회부의장 주호영의 읍소(泣訴)가 처절하다. 그는 지난달 28일 국회의장 우원식에게 “간곡히 요청한다. 더불어민주당의 법안 강행 처리도, 국민의힘이 벌이는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도 중단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주호영은 입장문을 통해 “국회의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증오의 굿판을 당장 멈춰야 한다”며 “여야 지도부가 국회의원들을 몰아넣고 있는 이 ‘바보들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고 역설했다.

주호영은 온건합리적 의회주의자란 평가를 받는 6선 여당 의원이다. 여야 ‘용산’ 모두 그의 말을 세게 내리쳐진 죽비(竹)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막장의 정치가 언제까지나 용서될 수는 없다. 이 못난 정치 싸움이 계속된다면 국민들이 손에 들 건 몽둥이밖에 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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