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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칼럼] 감정이 판치는 대한민국 정치판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4-08-12     news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무엇일까? 그것은 이성적이어야 할 정치가, 감정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는 측면일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판이 감정에 의해 지배되고 있음은 다양한 차원에서 증명될 수 있다.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팬덤의 존재다.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찾기 힘든 정치인 팬덤이, 우리나라 정치판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팬덤은 정치를 감성화한다. 팬덤이 정치를 감성화하는 이유는, 팬덤은 특정 정치인을 ‘추종’하는 것으로부터 비롯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특정 정치인에 대한 맹목에 가까운 추종은 이성을 마비시킨다. 특정 정치인의 범법 행위가 사법부에 의해 밝혀져도 그 정치인의 팬덤은 이를 ‘정치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더라도 이를 알 수 있다.

연예인 팬덤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 정치판에도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최근 뺑소니와 범인도피 교사 등 혐의로 구속기소 돼 있는 일을 한 연예인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국민의힘 박성훈 의원과 민주당 신영대 의원은 이른바 ‘김호중 방지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을 발의했었다. 해당 법안은, 김호중 씨처럼 이른바 ‘술타기’ 수법으로 음주 운전 혐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방지하자는 취지의 입법이었다. 음주 운전은 잠재적 살인 행위로 취급될 수 있을 만큼, 반드시 근절돼야 하는 중범죄이기 때문에, 음주 운전을 어떻게든 피하려고 꼼수를 부리는 것을 방지하는 노력은 당연히 필요하다.

해당 법안은 바로 그런 취지의 법안이라고 할 수 있는데, 법안 발의 직후 박 의원의 네이버 공식 블로그에는 “김호중 씨는 선행도 많이 하고 팬과 함께 수십억 원을 기부했다” 혹은 “앞날이 창창한 젊은 청년이 순간의 실수로 잘못했지만, 법안에 실명을 넣는 것은 인격 살인”이라며 법안 철회를 요구하는 댓글이 줄줄이 달렸다. 일부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박성훈, 똑똑히 기억하겠다. 다음 선거에서 보자”라는 댓글도 있었고, 박 의원의 의원직을 박탈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아무리 연예계와 같은 예술 분야는 감성이 지배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그래서 팬덤이라는 ‘감성적 존재’가 판치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의 주장을 하면, 이는 사회적 해악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성이 지배해야 정상인 정치판에서 팬덤이 정치를 감성화시킨다면, 이는 더욱 큰 문제를 야기시킨다. 자신들이 떠받드는 정치인이 공격받으면, 공격한 사람에게 벌떼처럼 몰려가서 문자 테러를 가하고, 지역 사무실에 몰려가 항의 시위를 한다. 또한, 자신들이 추종하는 정치인이 법적인 처벌을 받으면, 이를 정치 탄압이라며 사법부를 공격한다. 이런 상황들은, 팬덤이 민주주의의 근간인 제도적 신뢰를 어떻게 망가뜨리는가를 잘 보여준다. 한마디로, 팬덤은 정치를 감성화해 민주주의를 망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요새 보면, 정치인들 스스로가 감정에 복받쳐 정치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 같아서 걱정이다. 즉, 정치인 중 일부는 ‘분노’와 ‘증오’를 자신의 정치 행위의 동력으로 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이런 ‘분노’가 사회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괜찮다. 하지만, 그 ‘분노’가 ‘개인 차원의 분노’라면 문제다. ‘개인적 차원의 분노‘를 ‘민주주의’ 혹은 ‘공공의 이익’으로 포장하며 정치의 장으로 끌어들인다면, 정치는 개인적 원한을 푸는 ‘특정인의 한풀이’ 장소로 변하게 된다. 자신에 대한 사법적 조치가 정치 탄압이라며 대통령이나 여당을 과도하게 공격하거나, 탄핵을 입에 달고 사는 경우가 그런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탄핵 소추안이 1주일에 하나 정도씩 발의되는 세상이니, 탄핵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해도 놀라는 국민은 이제는 그리 많지 않겠지만, 툭하면 대통령의 행위가 ‘탄핵 요건’이라고 주장하는 정치인들을 보고 있노라면 짜증이 날 수밖에 없다. 청문회도 그런 감정적 정치의 도구가 됐다. 요새 국회는 ‘청문회 전성시대’라고 할 만한데, 청문회의 본래 목적은 사라지고, 대신 감정 섞인 언어만 난무하는, ‘감정 배출의 장(場)’으로 청문회가 전락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정치를 하면, 국민의 지지를 잃게 될 것임은 자명한데, 정작 이런 식으로 정치를 몰고 가는 당사자들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감정이 이성을 마비시켜, 현실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정치를 다시 살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성이 정치를 지배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정치적 상대방은 적(敵)이 아닌 파트너가 되고, 정치의 목적이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이 아닌, 협상을 통해 모든 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래야만 우리 정치가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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